사회 사건·사고

[세상만사] 매년 반복되는 대학가 청소노동자 시위..근본 해결책 없나

박지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7.13 17:01

수정 2022.07.13 17:51

임금 인상 요구는 최저임금 수준에 그쳐
원·하청 구조 개선이 노동자들 '목소리'
재학생 노동자측 입장 지지도
전문가 "대학측이 용역업체, 노동자와 진솔한 대화해야"
노동조건 개선 위해 연대하는 고려대 학생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서 열린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학생 기자회견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2.7.13 yatoya@yna.co.kr (끝)
노동조건 개선 위해 연대하는 고려대 학생들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본관 앞에서 열린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학생 기자회견에서 학생과 노동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2.7.13 yatoya@yna.co.kr (끝)
[파이낸셜뉴스] 서울지역 유수의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시급 400원가량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최소한의 생계 유지와 강도높은 노동에 준하는 대우를 받겠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일부 학생이 시위가 학생 수업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거는 일도 다반사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노사간 갈등 양상은 대학가나 일반 기업체나 비슷하다.
이 같은 시위는 매년 반복되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특히 중요한 건 단순 시급 인상이 청소노동자 요구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임금 인상은 전체가 아닌 일부다. 깊이 들여다보면 청소노동자들은 '원·하청 구조'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동자측 뿐 아니라 대학도 갈등과 소송전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원만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원·하청 고용 구조가 문제
13일 대학가에 따르면 연세대, 고려대 등 13개 주요 대학사업장의 청소·경비노동자들은 대학 측에 임금 인상 등을 촉구하며 집회 및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시간당 임금은 9390원이다. 법정 최저임금이 지난해 시급 8720원에서 올해 9160원으로 440원 인상된 점을 감안해 400원 올려 달라는 것이 노동자들 주장이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서비스지부 내 대학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지난해 11월 16개 용역업체와 2022년 임금 단체 교섭을 벌였지만 용역업체 측은 이를 거부했다. 이어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3월 미화·주차직 시급 400원 인상, 경비직 노동자 420원 인상을 권고했다. 그러나 용역업체가 대학 측에 책임을 넘기면서 모두 열차례가 넘는 협상을 벌였지만 양측간 극심한 이견으로 협상은 결렬됐다.

이후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한 시위에 나섰고 학내 갈등으로까지 번졌다.

최근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시위를 주도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형사고소·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고려대 노동자들은 이달 6일부터 고려대 본관에서 점거 농성중이다. 고려대 측은 용역업체에 보낸 공문을 통해 본관 퇴거 요청 불이행 시 민·형사상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외형상 시위는 임금이 주 원인처럼 보이지만 사실 청소노동자들의 요구에는 '원·하청' 고용 구조의 개선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 구조를 바꿔야 매년 반복되는 임금 투쟁이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다수 대학은 용역업체를 두고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간접 고용하고 있다. 때문에 시위 등이 발생할 경우 학교와 용역업체 측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쁜 모습이다.

김선영 서울지역서비스지부 조직부장은 "대학이 해마다 예산을 짤 때 '용역비' 항목에도 물가 인상률 등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역비의 90% 이상이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인건비로 들어가는 만큼 대학측이 예산을 짤 때부터 미리 선(先)반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재순 고려대 분회장은 "임금의 경우 2020년에는 230원, 2021년에는 130원가량 올랐다. 12년간 해마다 임금 투쟁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 달에 받는 돈은 200만원에도 못 미친다"며 "대부분 대학이 용역업체를 최저 금액을 제시하는 업체에 대한 '입찰제'로 정하고 있는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샤워 등 기본적인 복지 문제도 도마위에 올랐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측이 지난해 8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3개 대학사업장의 휴게실 148개소 중 전용 샤워시설이 있는 곳은 16개에 불과했다. 건물 내 전용 샤워시설이 없는 청소노동자 76% 이상이 샤워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학생들, 노동자와 연대도
일부 대학의 경우 청소·경비노동자들과 재학생이 연대에 나서며 대학 측에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대학 재학생이 노동자를 상대로 학습권 침해를 받았다며 소송전을 벌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려대 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고려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 시급 인상을 촉구했다.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 소속 오수진씨는 "최저임금 인상분인 시급 400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데도, 학교는 100일 넘게 버티고 있다"며 "쾌적한 환경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데에는 노동자분들의 노고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고려대 학대위 간사는 "대학과 용역업체 측이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임금안조차 내놓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며 "묵묵부답인 대학 본부 측을 규탄하고 고려대분회 측의 임금 인상, 샤워실 설치를 촉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역시 지난 6일 연세대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자들은 사회적 약자"라며 "대학측이 용역업체에게 내부 갈등의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만큼 대학측이 용역업체, 노동자와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서로 양보하는 수준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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