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1) 노우리 기자 = ‘품질에는 타협이 없다.’
지난 14일 찾은 삼성전기 부산 반도체 패키지 기판공장. 품질을 강조하는 각종 표어가 빼곡하게 적힌 계단을 오르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생산라인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유리섬유와 에폭시를 섞어 단단하게 만든 ‘코어(Core)’ 위로 구리로 만든 회로와 절연체를 차곡차곡 쌓고, 절연체를 뚫어 각 층 간 구리 회로를 연결한다. 회로끼리 전기신호가 원활하게 오가는지까지 확인하면 반도체를 맞이할 준비 끝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삼성전기가 지난 한 해 생산한 반도체 패키지 기판의 면적은 무려 70만3000㎡(제곱미터). 축구장 100개 면적과 맞먹는 규모다.
안정훈 삼성전기 패키지 지원팀장(상무)은 “1990년 자동차 부품사업을 위해 신설된 부산사업장은 시간이 지나며 MLCC, 패키지 기판을 비롯해 전반적인 원료 생산까지 품목 다변화 과정을 거쳤다”며 “2020년대 들어서는 패키지 기판 사업에서 부산사업장이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례적 兆 단위 투자…삼성전기가 빠진 '반도체 기판' 뭐길래
반도체 패키지 기판은 반도체와 메인 기판 간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제품이다. 반도체 칩은 메인 기판과 서로 연결돼야 하는데, 메인 기판의 회로 선폭이 반도체보다 통상 4배 이상 넓어 곧바로 연결할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게 바로 반도체 패키지 기판이다.
특히 삼성전기는 기판 제품군 중 고부가 제품으로 분류되는 ‘FC-BGA(플립칩 볼 그리드 어레이)’를 부산사업장을 중심으로 생산한다. FC-BGA는 PC, 서버, 네트워크, 자동차 등 고성능 및 고밀도 회로 연결을 요구하는 CPU(중앙처리장치), GPU(그래픽 처리장치) 칩을 실을 수 있는 고부가 기판 제품이다.
앞서 삼성전기는 지난해 12월 베트남 법인에 1조원 규모, 올해 6월엔 부산·세종, 베트남 생산법인에 각각 3000억원 FC-BGA 시설 구축을 위해 추가 투자를 단행하는 등 시장 선점을 위해 바쁘게 뛰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생산 설비를 둘러보기 위해 입어야 하는 방진복 곳곳에는 ‘I♡FCBG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황치원 기판개발 담당 상무는 ”부산사업장에선 반도체 기판 연구·개발(R&D)과 생산을 동시에 맡고, 베트남 공장에선 생산만 담당할 예정“이라며 ”세종사업장에서도 4~5년 전부터 FC-BGA를 생산할 수 있게끔 기술 통합을 해와서 (생산라인) 전환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기가 FC-BGA 시장에 공을 들이는 건 압도적인 성장성에 더해 기술 진입장벽이 높아 시장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와 업계 전망치를 종합하면 반도체 패키지 기판 시장 규모는 향후 4년간 연 10%씩 성장해 2026년 170억 달러(약 22조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 반도체 시장 연간 성장률 전망치는 4%, 파운드리는 5% 수준이다. 그만큼 패키지 기판의 성장세가 높다는 뜻이다.
특히 기술 난도가 가장 높은 서버용 FC-BGA의 연간 성장률 전망치는 23%에 달한다. 과거 서버용 반도체를 설계·생산할 수 있는 제조사가 인텔, AMD 등으로 제한됐다면, 최근 여러 빅테크 기업이 핵심 반도체를 직접 설계함에 따라 수요 급증은 필연적인 상황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현재 양산업체는 일본 이비덴코와 신코덴키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삼성전기는 하반기 서버용 FC-BGA 양산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 계획이다. 황 상무는 "최소 2026~2027년까지는 반도체 패키지 공급이 빠듯할 것으로 전망돼 생산능력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높이 쌓고, 크게 만들고…"기술력 강점 삼아 글로벌 3강 진출"
삼성전기가 내세운 기술력은 고성능 패키지 기판을 원하는 고객사를 겨냥한 ‘고다층, 대형화’에 초점을 맞췄다.
과거 반도체 산업에선 칩 자체 성능이 제일 중요한 요소였다면, 최근에는 여러 개의 칩을 조합하는 방식과 기술에 업계 관심이 쏠려있다. 그만큼 칩의 접합 부위인 기판의 회로 패턴이 복잡해질 뿐 아니라, 면적과 층수도 커지고 늘어나야 한다. 기존 모바일 AP칩용 기판 층수가 4층 수준이라면, 삼성전기가 생산하는 서버용 기판 층수는 16~22층에 달한다.
특히 삼성전기는 차세대 기술인 SoS(System On Substrates)를 강점으로 내세웠다. SoS는 2개 이상의 반도체 칩을 기판 위에 배열해 통합된 시스템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초미세화 공정을 적용한 패키지 기판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선 여러 개의 칩을 미세한 재배선 기술로 연결해야 한다. 황 상무는 “현재 3마이크로미터(㎛)가량 회로 선폭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머리카락 두께가 100㎛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머리카락 두께의 40분의 1에 달할 정도로 미세한 수준이다.
삼성전기는 이러한 고다층, 대형화 기술을 중심으로 고급(하이엔드) 패키지 기판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 '글로벌 3강'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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