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청와대 재활용법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7.20 18:22

수정 2022.07.20 18:22

[노주석 칼럼] 청와대 재활용법
우리 국민들의 '나들이 욕구'는 못 말리는 측면이 있다. 남이 다녀온 곳이나 신기한 것이 있을 때 내 눈으로 보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 이 같은 어마무시한 나들이 욕구가 '빨리빨리 문화'와 함께 오늘의 산업화와 다이내믹 코리아를 이룬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구름인파의 신화는 수두룩하다. 일례로 2005년 10월 개장한 청계천 방문객은 26개월 만에 4000만명을 돌파했다. 개장 58일 만에 1000만명, 224일 만에 2000만명, 338일 만에 3000만명을 넘어섰다.
또 여름 피서철이면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의 피서객 1000만명 돌파 기록이 입에 오르내린다. 2003년 1000만명을 처음 돌파한 이후 2010년까지 8년째 매해 1000만명 입장 대기록을 세운 바 있다. 시위면 시위, 행사면 행사 때마다 우리 국민의 운집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의 발길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지난 5월 10일 첫 개방 이후 두달 동안 다녀간 관람객이 130만명을 넘었다는 소식이다. 하루 평균 2만명 이상이 쇄도했다. 온라인 예약을 통해 인원을 제한하는 청와대 관람을 청계천이나 해운대와 단순 비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냥 뒀으면 벌써 1000만명 넘게 몰렸을 게 틀림없다.

필자는 관람인파나 관람행태보다 장소인문학적 시각에서 공간 활용에 관심을 갖고 있다. 청와대 운영관리의 주체는 대통령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등 3개 기관이다. 주인인 대통령실은 문화재청을 임시관리 주체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상급부처인 문체부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문제는 두 기관의 속내가 다르다는 점이다. 문화재청은 청와대를 국가사적으로 지정하거나,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등록해 보존하고 싶어한다. 반면 문체부는 미술관과 공연장, 도서관 등 문화시설로 꾸미려고 한다.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고려시대 남경서부터 1000년 가깝게 이어온 권력의 심장부를 온전하게 살려야 한다는 문화재청과 청와대를 경복궁, 서촌, 북촌, 인사동과 연결하는 역사문화벨트로 조성하려는 문체부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청와대를 '국립근대미술관'으로 전환하자는 제3의 안까지 내놨다. 역사적 상징성을 가진 본관과 관저는 그대로 두는 대신 춘추관과 여민관, 영빈관 등 나머지 건물을 한국근대 수묵채색화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한국근대 유화관, 한국근대 조각전시실 등으로 채우자는 방안이다.

문체부는 21일 청와대 미래상 청사진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보존은 보존대로, 활용은 활용대로 의미가 있어 보이지만 결국 시민이 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상책이다. 기존에 실시했던 '청와대 개방에 대한 인식과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4명은 '원형 보존'에 동의했다. '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에 2명이, '문화예술공간 조성'엔 1.5명이 각각 동의했다. 더 머뭇댈 이유가 없다.
여러 차례 조사를 더 실시한 뒤 도출된 최대공약수에 따르면 그만이다. 어렵사리 돌아온 청와대는 유관기관의 밥그릇 챙기기 대상이 아니다.
어떤 결론이 나올지 즐거운 고민이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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