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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튀니지, 독재 회귀?…대통령 권한 확대 개헌 국민투표

뉴스1

입력 2022.07.25 13:08

수정 2022.07.25 13:08


(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2010년 '아랍의 봄' 물결의 시작점이었던 북아프리카 튀니지가 25일(현지시간)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이번 개헌은 1년 전 집권한 카이스 사이에드 대통령이 주도한 것으로,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과 군 통수권, 판사 임명권 등을 부여하는 내용이 골자다.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 없이 정부 인사들을 임명할 권리도 갖게 된다. 2024년 5월 임기가 끝나기 전 입법부가 대통령을 중도 퇴진시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대통령이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투표는 현지시간으로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튀니지 전역의 1만1000여개 투표소에서 실시된다.


튀니지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튀니지 전체 인구 1200만명 가운데 약 930만명이 자동으로 투표권자로 등록돼 있다. 이들 중에는 해외 체류 유권자 35만6000명이 포함돼 있다.

결과는 아직 안갯속이지만, 튀니지 국민들은 이번 국민투표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회도 이 투표에 대한 '보이콧'을 주장하고 있다.

튀니지의 국민투표는 규정상 얼마나 많은 유권자들이 참여하느냐에 상관없이 투표 결과에 따라 효력이 발생한다. 분석가들은 전체적으로 투표율이 낮은 가운데 찬성 표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튀니지, 민주화 성공했지만 경제는 낙제점

튀니지는 아랍의 봄 혁명이 시작된 곳이자, 독재자였던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대통령을 축출한 뒤 아랍권에서 유일하게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국민들의 삶은 오히려 더 궁핍해졌다.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튀니지 재정 적자 폭은 국민 총생산 GDP의 11.5%에 달해 40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지난해 실업률은 18%인데다 공공부문에서는 임금 지급이 지연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7.8%를 기록했다. 특히 밀 수입량의 50%를 우크라이나에서 들여오는 튀니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가격이 10여 년 만에 정점을 찍었다.

사이에드 대통령은 이번 국민투표를 통해 입법부와 사법부의 무능을 척결하고 뿌리깊은 경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한다. 사이에드 대통령의 헌법 개정안 초안 작성을 도왔던 법률 전문가 사데크 벨라이드는 "대통령이 만든 초안은 자문위원회가 제안했던 초안과 완전히 다르다"면서 개헌안 통과가 새로운 독재 정권을 세울 수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튀니지 곳곳에는 국민투표에 찬성표를 던지라는 정부 광고가 곳곳에 붙어 있다.

하지만 정치 분석가 유세프 체리프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튀니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에 투표하는지, 왜 투표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고립된 사이에드 대통령, 젊은층 지지 힘입어 권력 공고화

헌법학자이자 법대 교수 출신인 사이에드 대통령은 2019년 대선에서 반부패와 반엘리트주의를 기치로 걸고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튀니지의 경제난은 계속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치며 사이에드 대통령은 정치권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AFP는 그가 최근 정치권에서 점점 더 고립되면서 공식 영상으로 정적들을 향해 '뱀' '병균' '반역자'라고 일갈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난달에는 히셈 메시시 전 총리를 해임하면서 의회를 마비시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이에드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층인 젊은이들을 규합해 개헌을 성공시키고, 이를 통해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휘어잡으려 하고 있다.

체리프는 "현재 튀니지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도 감옥에 가지 않으며, 국민투표에서도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전통적인 독재 정권 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도 "이번 개헌안은 튀니지가 2011년 이전에 경험했던 정권들과 유사한 권위주의 정권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튀니지 정부는 IMF로부터 40억달러(약 5조200억원) 규모의 대출을 확보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튀니지 정부는 이를 위해 임금 동결, 공공부문 채용 중단, 에너지·식량 보조금 삭감, 국영기업 지분 일부 매각 등이 포함된 개혁안을 발표했다.


AFP는 이번 협상이 튀니지에 더 많은 경제적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사이에드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향방을 가르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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