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2주 휴정기' 판사들은 더 바쁘다… '깡치사건' 보느라

이정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7.31 17:33

수정 2022.07.31 18:35

휴가 가기보다 밀린 업무 챙겨
사실관계 복잡한 사건 시간 할애
서울중앙지법은 지난주부터 휴정해 2주차인 이번주까지 재판을 하지 않는다. 서울고법은 다음주까지 3주간 휴정이다. 일부 형사 사건 외에는 일정이 없다. 7월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휴정기에도 판사들은 밀린 업무를 챙기느라 분주하다. 해결이 어려운 '깡치사건' 파일도 이 기간동안 판사들의 손을 더 많이 탄다. 깡치사건은 기록이 방대하고 내용 파악이 어려워 품이 많이 드는 사건을 이르는 법조계 은어다.
더러는 공력을 쏟은 만큼 보람을 찾기 어려운 사건을 가리킬 때도 있다. 1년에 두 차례, 여름과 겨울 휴정기는 일상적인 재판 업무가 사라져 여유가 생기는 만큼 두꺼운 기록을 펼치기에 좋은 때다.

■나 홀로 소송·민원성 사건에 많아

깡치사건은 보통 민사사건에 많다. 대리인 없이 '나 홀로 소송'을 하는 경우 소송 경험이 없는 당사자가 직접 나서면서 서면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 사건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현직 판사는 "무엇을 주장하고자 하는지 본인도 모르다 보니 불안해서 두꺼운 서면이 제출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빌린 돈을 받기 위한 구상금 소송은 대표적인 깡치사건의 예다. 곗돈과 관련된 소송은 장부도 없고, 있더라도 '철수엄마', '홍길동 미용실'처럼 실명이 아닌 기록들이 대부분이라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 더욱 어렵다. 빌려주고 받지 못한 돈을 두고 벌이는 소송이다 보니 양측 간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하는 판사들 입장에서 곤란한 경우가 적지 않다.

■휴정기 내내 '깡치사건' 보기도

깡치사건을 들춰보다 휴정기를 다 보내는 판사도 있다. 수년 전 군 내 의문사 사건 항소심을 맡았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일주일 내내 군 관계자 50명 이상의 진술 기록 2만페이지를 훑었다. 당시 사건 쟁점은 군 내에서 사망한 군인의 죽음을 타살인지 극단 선택인지를 가리는 것이었는데, 2심에서 1심 판단이 뒤집히면서 판결문을 다시 새로 써야 했다. 80여쪽이 넘는 판결문을 쓰는 데만 또 일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2년마다 재판부가 바뀌었던 탓에 여러 판사의 손을 거치며 '깡치사건화'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건 파악을 위한 품은 많이 드는데 재판부가 여러 번 바뀔 동안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은 종국에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사건'이 된다.

또 다른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부장판사로 근무할 당시 '전기요금 누진제 소송'을 맡게 됐다. 전기요금 누진제 소송은 '누진제 적용은 평등권 침해'라며 차액을 돌려달라는 소송이었다. 이미 소송이 제기된 지 3년가량 지난 시점에 사건을 맡게 된 그는 선고기일을 인사가 있는 2월로 잡고 고민에 빠졌다. C 변호사는 "다음 재판부에 판결을 미루고 싶다는 유혹이 없지 않았다"고 했다.

깡치사건은 법원의 사건 적체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2년마다 한 번씩 재판부가 바뀌었던 탓에 소송 당사자도, 바뀌는 재판부도 지리한 재판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대법원이 올해 초 한 재판부에서 재판장이 근무하는 기간을 확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월부터 개정·시행 중인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라 재판장이 한 재판부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기존 2년에서 2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한 현직 판사는 "재판부가 바뀌면 새로운 재판부는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한다"며 "재판부 사무분담 기간 확대는 깡치사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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