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본질은.." 의료계 현실 꼬집은 서울대 교수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04 04:18

수정 2022.08.04 06:25

[서울=뉴시스]서울아산병원 전경(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2021.09.27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서울아산병원 전경(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2021.09.27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지난달 24일 서울아산병원의 30대 간호사가 근무 중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다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내부에 수술 가능한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갔다 결국 숨진 사고와 관련해 국내 한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본질을 봐달라"고 목소리를 냈다.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뇌혈관외과) 교수는 3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사고 관련 보도 기사에 실명으로 장문의 댓글을 달았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뇌혈관외과) 방재승 교수다. 실명으로 글을 올린다"는 말로 글을 시작한 방 교수는 "아산병원 현직 간호사분이 그것도 근무 중에 쓰러졌는데 수술을 집도할 뇌혈괸외과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해서 수술했으나 사망했다는 사실 자체는 매우 안타깝고 충격적인 일"이라며 "국민분들의 분노로 인한 댓글들을 보고 나이 50대 중반의 뇌혈관외과 교수로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신경외과 전문의 방재승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홈페이지 제공) ⓒ 뉴스1 /사진=뉴스1
신경외과 전문의 방재승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홈페이지 제공) ⓒ 뉴스1 /사진=뉴스1
방 교수는 "사건의 본질은 우리나라 '빅5' 병원에 뇌혈관외과 교수는 기껏해야 2~3명이 전부라는 현실이며 그 큰 아산 병원도 뇌혈관 외과 교수는 2명 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 교수는 "사고 당일 한 분은 해외 학회 참석 중이셨고 또 한 분은 지방 출장 중이셔서 뇌혈관 외과 교수가 아닌 뇌혈관 내시술 전문 교수가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보려고 색전술로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출혈 부위를 막을 수 없었고 머리 여는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병원에 없어 환자를 살려보려고 수소문해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했다.
본인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 교수는 "그 큰 아산병원에서 뇌혈관 외과 교수 달랑 2명이서 1년 365일을 퐁당퐁당 당직을 서고 있는데, 과연 국민 여러분들 중 몇%가 나이 50살을 넘어서까지 인생을 바쳐서 과로하면서 근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서울=뉴시스]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고 보도 기사에 단 댓글.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2022.08.03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고 보도 기사에 단 댓글. (사진=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2022.08.03 /사진=뉴시스
방 교수는 "의사도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라 실력있는 의사가 되려면 세계학회에 참석해 유수한 세계적인 의사들과 발표하고 토론해야 수준이 올라간다. 의사의 해외학회 참석을 마냥 노는 것으로만 보시지 않으셨으면 한다"며 "뇌혈관 수술의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진료비)로 인해 지원자도 급감해 없는 한국 현실에서 뇌혈관외과 의사를 전임의까지 양성해 놓으면 대부분이 머리 열고 수술하지 않는 코일 색전술, 스텐트 등 뇌혈관내시술(신경중재시술)을 하는 의사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큰 대학병원에는 뇌혈관외과 교수가 그나마 2~3명이라도 있지, 중소병원이나 지방 대학병원에는 1명만 있거나 아예 없다"고 설명했다.

방 교수는 "한국에서 40대 이상 실력있는 뇌혈관 외과 의사는 거의 고갈된 상태"라며 "꿈을 가지고 들어온 신경외과 전공의들도 전공의 4년을 마치고 나면 현실의 벽에 절망하며 대부분 척추 전문의가 되는 게 현실이다. 현직 뇌혈관외과의사로서 살아보니 마치 한일합방시대 독립운동을 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방 교수는 "현실은 밤에 국민들이 뇌출혈로 급히 병원을 찾았을 때 실력있는 뇌혈관 의사가 날밤을 새고 수술하러 나올 수 있는 병원은 전국에 거의 없다는 것"이라며 "국민들도 '중증의료분야 지원, 뇌혈관외과분야 지원' 이야기가 나오면 '의사들 밥그릇 논쟁'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고 힘을 실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복지부와 정치권에서 중증의료를 얘기하지만, 정작 신경외과는 필수진료과인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에서 빠져 있는 상황이여서 허공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며 "책임자를 처벌하고 끝나는 식이 아니라 고갈돼 가고 있는 뇌혈관 외과 의사를 보호하고 실력있는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를 개선하는 것 만이 이런 안타까운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근본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의 파장은 의료계를 넘어 전방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전날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기일 복지부 제2차관에게 진상조사 여부에 대해 질의하기도 했다.

앞서 이날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고를 통해 필수의료 분야가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저수가 체계를 개선하고 왜곡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며 "정부는 지역별로 뇌혈관질환 응급체계가 실질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모색하고 인력 확보와 장비 지원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개두술이 필요한 뇌동맥류 클립결찰술(클립핑 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들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 속에서 수익도 안 되면서 어렵고 위험한 수술을 사명감만 가지고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아산병원이 당직 시스템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수술이 가능한 의사 1명이 해외연수를 나가 있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1명이 365일 당직을 설 수 없어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면서 "병원이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는 데 미흡했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관리감독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4일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현장점검에 나설 예정이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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