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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4 예비회의 나선 韓, 당장 강경 대응 못하는 中

김학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08 16:51

수정 2022.08.08 16:58

미·중 사이에서 외줄타기 시작
尹대통령은 국익 강조
IPEF 가입과 유사한 가입 흐름 보여
中, 강경 대응보다 韓과 유대 강조할 듯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연설을 마친 후 참석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연설을 마친 후 참석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베이징=김학재 서영준 기자 정지우 특파원】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가입을 놓고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칩4'를 통해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이 첨단 반도체 생태계에서 공급망 안정을 위해 분야별 협력하려고 하지만, 중국 당국은 미국의 '칩4' 구상이 자신들을 겨냥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서다. 한국은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미중 양국 사이에 팽팽한 긴장 국면이 조성된 가운데, 우리나라가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구도 변화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단 한국의 '칩4' 예비회의 참여만으로 중국이 당장 강하게 반발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의 '칩4' 가입이 임박한다 해도 중국이 과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같은 강경한 대응을 하기는 무리라는 분석도 있다.

■尹대통령 "철저하게 국익 중심"
윤석열 대통령은 8일 '칩4' 예비회의 참여와 관련, "정부 각 부처가 그 문제는 철저하게 우리 국익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청사로 출근하던 도중 기자들과 만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반응은 지난 5월 미국 주도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과정에서도 유사하게 나온 바 있다. 당시에도 국익을 강조했던 윤 대통령은 룰 세팅에서 참여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IPEF 참여를 결정했다.

이번 '칩4' 예비회의 참여도 IPEF 참여와 같은 방식의 절차를 거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정부 관계자도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대화에 국익 차원에서 종합적인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 정부의 칩4 예비 회의 참가가 정식 가입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예비 회의에서 최초로 반도체 공급망 대화를 제안한 미국의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보는데 목적이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9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리는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간의 한중 외교장관회담 등에서 미국의 '칩4' 제안에 관한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중국 측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中, 당장 한국에 강경 대응 어려울 듯
일단 '칩4'를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 배제 전략'으로 보고 있는 중국은 칩4와 한중 교역을 묶는 방법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칩4에 가입할 경우 한중 관계가 불확실해지면서 식품·유통·관광·문화 콘텐츠 등 교역에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 성격이다.

2017년 사드 이후 전개한 한한령의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중국이 직접적인 반도체 규제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전자와 SK하아닉스는 중국에 반도체 생산시설과 후공정 시설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현지 생산품 대부분이 중국 내수용으로 공급된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소비는 한국기업을 제외하면 대체할 회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미성숙한 반도체 산업을 갖고 있는 중국이 반도체로 보복하는 하는 것은 자멸하는 것과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개별 국가로 따지면 한국은 미국에 이어 중국의 교역 2위 국가로 오를 만큼 부상했기 때문에 한쪽만의 의존적 경제 관계에선 벗어난 상태라는 점을 중국도 인식하고 있다.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경제 강국 한국과 완전히 등을 돌리면 전략적으로도 중국에겐 불리하다. 칩4 동맹국에서 중국이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한국뿐이다.

양국 외교 장관 회담에서도 칩4 가입을 놓고 거친 단어로 공격하기 보다는 한국의 대중국 경제 의존도를 부각시키며 자국 이익 극대화를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예컨대 이르면 이달 말 혹은 내달 초께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칩4 예비회의에서 한국을 통해 중국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조율하겠다는 것이다. 예비회의는 칩4의 공식 명칭과 성격, 의제 등 참가국 간 규범을 만드는 과정이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랴오닝성사회과학원의 한반도 전문가인 뤼아오 연구원을 인용, "중국과 한국의 협력이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 맹목적으로 미국을 따른다면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면서 "박 장관의 방문을 통해 우호관계 및 경제협력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파악해 중한 무역 협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hjkim01@fnnews.com 김학재 서영준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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