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광화문광장 지하화를 청함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08 18:18

수정 2022.08.08 18:18

[노주석 칼럼] 광화문광장 지하화를 청함
스트리토노믹스(Streetonomics)는 거리 이름을 통해 도시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종교적 가치를 평가하는 신종 분석법이다. 이에 따르면 유럽 주요 도시의 거리 이름은 그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를 담고 있다. 파리에는 유독 예술가와 과학자, 군인의 이름을 딴 거리가 많다. 런던엔 왕실과 정치인, 군인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빈은 여성의 이름이 다수를 차지했다.

서울의 거리 이름에는 어떤 가치가 숨어 있을까. 서울은 2000년 역사를 가진 오래된 도시이지만 식민지와 전쟁을 겪으면서 마치 신생도시처럼 천지개벽을 했다. 12개 큰길 중 6개의 이름이 해방 직후 생겼다.
1946년 서울시 가로명제정위원회가 지금의 세종로, 충무로, 을지로, 충정로, 퇴계로, 원효로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였다. 기존 광화문통, 본정, 황금정, 죽첨정, 소화통, 원정이라는 왜식 지명 지우기였다.

위원회에 참여했던 사학자 황의돈은 회고록에서 "세종로는 우리나라 문치의 위인인 세종대왕, 충무로는 무인 충무공, 을지로는 육군의 대표인물 을지문덕, 원효로는 불교의 대표인물 원효대사, 퇴계로는 유학계의 대표인물 이퇴계 그리고 충정로는 순국열사 중 민충정공으로 책정하였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위인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 덕분에 역사적 흔적이 별로 없는 현대도시 서울이 역사도시로 여겨지곤 한다.

율곡 이이를 기리는 율곡로는 그때 없었다. 1932년에 길이 뚫린 율곡로의 옛 이름은 종묘관통선이었다. 율곡로라는 길 이름은 1966년에 뒤늦게 붙었다. 율곡이 잠시 머문 집이 인사동 137 승동교회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기 때문이다. 종묘관통선은 말 그대로 창덕궁·창경궁과 종묘를 분리, 관통하는 일제강점기의 신작로였다. 율곡로는 2009년 지하화 공사에 들어가 지난달 21일 개통했다. 끊어졌던 창덕궁과 종묘가 90년 만에 다시 이어졌다.

질질 끌던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가 마무리돼 지난 6일 재개장됐다. 두 차례 공사에 물경 1300억원이 들었다. 돈도 돈이지만 이 기간 시민이 겪은 교통과 보행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서울의 대표 도로, 대한민국의 얼굴은 늘 '공사 중'이었다.

아직도 미완성이다. 광화문 앞 월대조성 공사를 남겨뒀고, 꼬일 대로 꼬인 세종대로와 율곡로, 사직로의 교통흐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 다른 대대적 보수공사를 예고한다. 서울특별시장이 바뀔 때마다 3차, 4차 재구조화의 대상이 될 처지다. 2017년 각계 전문가 33인으로 결성된 '광화문포럼'이 제시한 최종안을 꺼내볼 필요가 있다. 광화문광장 전체를 보행광장으로 조성하고, 차량은 지하로 다니도록 권고한 안이다.

광화문광장은 그 자체가 대한민국이다. 정권의 선물도, 서울특별시장의 치적 쌓기용 장난감도 아니다.
종묘단절의 문제를 율곡로 지하화로 슬기롭게 해결했듯이 광화문광장도 세종대로 지하차도화로 푸는 게 정답이다. 점점 돈이 더 많이 들어가고, 잦은 성형수술로 누더기가 되기 전에 말이다.
부디 세종대로라는 귀중한 거리 이름의 가치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