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 엘리너 루스벨트의 헌신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10 18:28

수정 2022.08.10 18:28

[최진숙 칼럼] 엘리너 루스벨트의 헌신
"당신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고 말한 이는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다. 미국의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FDR)의 부인이다. 엘리너가 남긴 어록은 수도 없이 많다. "돈을 잃은 자는 많은 것을 잃은 것이며 친구를 잃은 자는 더 많은 것을 잃은 것이며 신의를 잃은 자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이 유명한 경구도 엘리너의 것이었다.

미국 정치학자들은 미국 퍼스트레이디 역사를 엘리너 전과 후로 구분한다.
엘리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백악관 밖으로 나온 영부인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대중 속으로 파고든 미국 첫 영부인'이라는 수식어도 그의 행적을 설명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인권투사였고, 사회운동가였고, 루스벨트 정부의 기막힌 책사였다. 기득권의 엄청난 저항도 불렀다. 백인 우월 비밀결사체 KKK단은 대통령 부인 목숨에 2만5000달러 현상금을 걸었다.

엘리너가 없었다면 루스벨트 정부도 없었다는 평가는 과하지 않다. 루스벨트가 소아마비 증상을 보인 것이 대선 2년 전이다. 휠체어에 앉은 남편의 팔과 다리 역할을 엘리너가 했다. 대통령이 된 남편을 대신해 현장을 누비며 그의 귀가 됐던 이도 엘리너다. 대공황 시대 뉴딜 신화를 쓴 루스벨트 정부의 양심으로 통했다.

이상주의자 영부인·실용주의자 대통령의 조합은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후 엘리너는 대국민 연설을 한다.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다음 날 대통령은 미국의 참전을 공식 선포했다.

종전을 코앞에 두고 루스벨트가 서거했을 때 미국은 비탄에 잠겼다. 전쟁과 불황에서 나라를 구한 지도자의 타계로 인한 상실감뿐 아니라 엘리너의 퇴장을 믿지 못하는 이들의 슬픔이 지대했다. 엘리너의 존재감이 그만큼 컸다. 많은 분석가들은 엘리너의 힘을 불굴의 의지, 무한한 소통력에서 찾는다. "내 인생 이야기가 가치 있다면 그것은 재주 없는 한 인간이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 하나로 어려움과 싸워, 결국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의 자전에세이 '세상을 끌어안아라'(You learn by living·1958년) 첫 장에 나온다.

엘리너는 부유한 명문가 출신이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으면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상처 많은 내성적인 소녀가 헌신적인 여전사로 거듭나기까지 역경의 시간이었다. 그를 키운 건 이것이다. "두 가지 능력의 위대함을 알아야 한다. 귀를 기울이는 능력,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 엘리너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퍼스트레이디로 늘 첫손에 꼽혔다. 그 계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로 이어진다. 대중적 호소력 면에서 미셸은 오바마를 능가한다. 열정, 끈기, 진정성의 아이콘으로 불릴 만하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상(像)을 우리 기준으로 삼을 순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역사, 정치의 발전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참고할 만한 것은 적지 않다. 엘리너, 미셸 같은 소통의 달인들이 보여준 진심이다. 우리 대통령의 부인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피로감을 준다.
김건희 여사의 과한 처신은 자신이 한 약속과 너무나 차이가 있다. 각별한 다짐으로 돌아보길 권한다.
아직 시간은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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