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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없는 수묵화의 매력…주목받는 화가 신영훈

개인작부터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까지, 수묵화와 대중을 이어주는 화가 신영훈
흔히 ‘수묵화’ 하면 한지 위에 채워진 잔잔한 먹의 농담을 떠올린다. 나이 지긋하고 고상한 취향을 지닌 이들만 좋아할 것이라는 장르적 편견도 뒤따른다. 작가 신영훈의 작품 앞에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잠시 내려놔도 좋다. 때론 수채화처럼, 때론 사진처럼 그의 수묵화에는 다양한 감성이 흐른다. 빤하지 않은 붓질로 대중들에게 생경한 감동을 전하는 그를 양주 작업실에서 만났다.

사진 = 신영훈 작가
사진 = 신영훈 작가

작가 신영훈이 예술가로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틀에 박힌 사고다. 그래서일까. 그는 수묵화의 매 매력을 ‘먹의 농담’에만 가두지 않는다. 지필묵(紙筆墨)이라는 재료와 농담이라는 표현적 한계를 벗어나 수묵을 능숙하게 변주하는 그의 수묵 세계는 어떻게 진화해왔을까.

동양화가였던 이모부의 영향으로 그는 어릴 적부터 먹과 붓을 접했다. 자연스럽게 대학 전공으로 이어졌다. 수묵화를 그리게 된 건 무엇보다 수묵이 가진 무궁무진한 스펙트럼에 매료되어서다. 하지만 ‘수묵화는 이래야 한다’는 정형성과 선입견에 부딪히는 상황과 마주하기도 했다. 그런 낡은 시선과 클리셰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그는 주제, 소재, 표현기법 등 작품을 이루는 요소들의 확장성에 주목했다. 형식에 얽매이는 것이 작가로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동양화를 한다고 하면 어김없이 ‘산수화나 미인도를 그리냐’는 질문이 돌아와요. 대중이 생각하는 동양화의 이미지가 굳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학교에서 그림을 그릴 때도 전통 방식을 강요받을 때가 많았는데,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적 감각으로 접근하고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어요. 재료나 소재에 한계를 두지 않으려고 꾸준히 연구했죠.”
사진 = 좌:Hard-boiled(200x145.5cm 광목에 수묵담채 2017) / 우:Director's Cut_59x100cm_광목에 수묵채색_2022_신영훈作
사진 = 좌:Hard-boiled(200x145.5cm 광목에 수묵담채 2017) / 우:Director's Cut_59x100cm_광목에 수묵채색_2022_신영훈作

그의 모험적 기질은 앞선 개인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음유적 클리셰>(2017)에서 그는 동시대 여성을 수묵의 범주 안에서 감각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림에는 곱게 단장한 한복 입은 여인이 아닌, 속옷만 걸친 여성이 등장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한다. 관객이 기대하는 동양화 속 여성의 이미지를 보기 좋게 뒤집은 작품이었다.

광목천을 밑바탕으로 선택한 것 역시 ‘한지 위에 먹’이라는 수묵화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노력의 연장이다. <Director’s Cut >(2019)에서 선보인 작품들의 첫인상은 마치 그림이 아닌 사진 같다. 물감과 먹이 대형 광목천 위에 얹히고 스며들어 정교하게 완성된 신비로운 풍경 앞에서, 관객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듯한 미묘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순기능 중 하나는 ‘경험의 확장’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관객에게도 전달되길 바란다.

“제 그림을 보러 오신 분들이 ‘수묵화가 이렇게도 표현될 수도 있구나’ 느끼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를 찾는 건 갤러리나 전시관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을 제안했다. 역사소설 <초한지>의 표지 일러스트 작업을 비롯해 LS일렉트릭의 그린에너지 사업을 산수화에 녹여낸 ‘LS일렉트릭 산수화’ 시리즈,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아트웍, <해적>의 수묵화 포스터 등 흥미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디즈니코리아의 의뢰로 <겨울왕국> 캐릭터를 한지에 그려 한지 등으로 만든 경험도 특별하게 남아있다. 겨울왕국 제작팀을 위한 선물이었지만 따로 구매 문의를 받았을 만큼 화제였다.

이 밖에 식당이나 병원의 벽화, 간판 등 일상의 가까운 곳까지도 그의 붓질이 스쳤다. 다양한 콜라보 작업을 통해 멀게만 느껴지던 수묵화를 대중들이 더 친근하게 즐길 수 있도록 다가갔다.

타임랩스로 기록한 그의 작업 과정을 보면 붓질에 망설임이 없다. 가히 일필휘지다.
그려야 할 대상을 머릿속에 완벽하게 집어넣은 후 그리기 시작한다는 그는 붓질을 춤에 비유한다.

“댄서가 춤을 출 때 다음 동작을 생각하며 추진 않잖아요. 수많은 연습 끝에 본능적으로 아는 거죠.

작가의 ‘붓질’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뻗어나갈까. 그는 여전히 새로운 수묵의 가능성을 탐험 중이다. 먹의 농담처럼 서서히 그리고 깊이 스며들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