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냉장고 파먹고 도시락 챙기고.... 일주일 '무지출 챌린지' 해보니

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14 15:05

수정 2022.08.14 16:36

6일간 1만5000원대로 극한 절약 체험
"돈 없이는 바깥에서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아"
냉장고 파먹고 온라인서 '폐지 줍기'
청년들이 무지출 하는 이유 "월급 70~80% 저축"
지난 12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한 햄버거 가게에서 파이낸셜뉴스 기자가 최후의 무지출 챌린지 수단으로 '선배 찬스'를 썼다. 김모 부장이 사준 햄버거에 포인트는 기자 이름으로 적립했다. /사진=김모 부장 본인 제공
지난 12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한 햄버거 가게에서 파이낸셜뉴스 기자가 최후의 무지출 챌린지 수단으로 '선배 찬스'를 썼다. 김모 부장이 사준 햄버거에 포인트는 기자 이름으로 적립했다. /사진=김모 부장 본인 제공

냉장고를 파먹고 빵과 도시락으로 4일을 버텼다. 점심 약속이 있을땐 어쩔 수 없이 돈을 썼다.
이제 집에서 먹을 식료품까지 바닥 났다. 공짜 식사로 점심값을 아끼기 위한 최후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관계를 파괴하지 않고 남의 돈으로 점심 먹기가 쉬운 일일까.고물가 시대를 맞아 2030 청년들 사이에서 '무지출 챌린지' 열풍이 불고 있다. 기자도 지난 7~12일 6일간 극한 절약에 도전해봤다.

8일 낮 12시30분께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2층에 위치한 카페 겸 도서관. 음료수는 구매해서 마셔야 하지만 도서관 자리와 비치된 도서만 이용하는 것은 무료다. 무지출 챌린지를 직접 해보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적다는 점이 어려웠다. /사진=노유정 기자
8일 낮 12시30분께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2층에 위치한 카페 겸 도서관. 음료수는 구매해서 마셔야 하지만 도서관 자리와 비치된 도서만 이용하는 것은 무료다. 무지출 챌린지를 직접 해보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적다는 점이 어려웠다. /사진=노유정 기자

■냉장고 파먹고, 도시락 챙기고, 온라인 폐지줍기
첫날은 '냉장고 파먹기'로 버텼다. 일요일이어서 집에서 한 발짝도 안나가고 냉장고를 뒤져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문제는 둘쨋날인 8일부터였다. 폭우에 취재 현장으로 출근하면서 도전이 버거워졌다. 이날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취재를 마친 뒤 눅눅한 시장 바닥에 앉아 노트북으로 기사를 썼다. '카페도 가지 못하고 이렇게까지 아껴야 하나, 서럽다'고 생각할 때쯤 한 상인이 기자를 불렀다. 시장 2층으로 올라가면 무료 도서관이 있다고 했다. 그분의 얼굴 뒤로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2층에 있는 카페 겸 도서관은 30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테이블과 의자가 넉넉했다. 학생 1명과 50대 이상 어르신 두어명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에서 싸 온 빵을 먹으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돈 없이는 앉아 있을 곳이 없다. 카페에서 파는 커피는 음료값이 아니라 자리 임대료인 셈이다.

쓰기만 해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겠다 싶어 쿠폰과 포인트 사냥에 나섰다. 일명 '온라인 폐지 줍기.' 온라인에서 각종 기업의 프로모션 사이트에 접속해 기자의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등을 입력했다. 편의점 이용권 3000원권과 온라인 결제 적립금 2200원을 쌓았다. '앗! 개인정보, 신발보다 싸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8일 오후 7시께 기자가 6940원으로 볶음밥 도시락을 만들었다. 세 끼에 해당하는 볶음밥을 한꺼번에 만들어 두고 냉동실에 얼린 뒤 매일 아침에 출근하면서 하나씩 해동해서 가지고 갔다. /사진=노유정 기자
8일 오후 7시께 기자가 6940원으로 볶음밥 도시락을 만들었다. 세 끼에 해당하는 볶음밥을 한꺼번에 만들어 두고 냉동실에 얼린 뒤 매일 아침에 출근하면서 하나씩 해동해서 가지고 갔다. /사진=노유정 기자

■쿠폰 모아 밥 먹고 '선배 찬스'까지
4일차까지는 도시락을 이용해 그럭저럭 버틸 만 했다. 양파 6개, 버섯 한 봉지, 애호박 1개를 6940원에 샀다. 사온 채소들을 다듬어 볶음밥 도시락 세 끼를 만들었고 이틀 동안 길가 벤치 등에서 눈치를 보며 허겁지겁 해치웠다. 저녁에는 집에서 라면만 먹거나 회사 인근 햄버거 프랜차이즈점에서 200원에 햄버거를 사 먹었다. 해당 프랜차이즈 어플을 통해 할인 쿠폰을 받아 4200원에 햄버거 단품을 주문했고 회사에서 인근 음식점과 제휴를 맺고 제공하는 4000원짜리 식권을 낸 뒤 남은 200원만 결제했다.

5일차인 점심 약속이 있어 더치페이로 8500원짜리 돈가스를 사먹었다. 무지출 때문에 남에게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 '언제 세트도 아닌 돈가스 단품이 8500원까지 올랐나?' 싶었지만 한 입 먹으니 튀긴 빵가루 하나하나 황홀하게 느껴졌다. 또 간만의 만남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니 살 것 같았다. 지출을 줄이려면 약속도 줄여야 한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대신 저녁은 집에서 남은 도시락을 먹었다.

마지막 날은 더 아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식료품도, 쿠폰도 바닥났다. '부장 면담' 찬스를 쓰기로 했다. 무지출 챌린지 체험 기사를 제안한 장본인이기에 '챌린지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애로사항을 전했다. 김모 부장(49)은 "'업무에 애로사항이 있나', '팀 내 불화가 생겼나', '이직하겠다고 하는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며 점심을 잡아줬다. 고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차원에서 가장 비싼 메뉴를 주문했다. 햄버거 2개와 쉐이크, 감자칩까지. 4만원 넘는 금액이 나왔다. 포인트도 기자의 이름으로 적립했다. 갑작스러운 부담감에 햄버거가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6일간 기자가 쓴 돈은 1만5640원이었다. 절약은 개인의 미래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도한 절약이 타인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가 소비를 줄인다면 경제 생태계는 잘 돌아갈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게 됐다.

■왜 청년들은 극한의 절약에 빠졌나
14일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에 따르면 2021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온라인상의 빅데이터 약 120만 건을 분석한 결과 '무지출', '무소비' 언급량은 2021년 하반기 1만1364건에서 2022년 상반기 1만4819건으로 약 30% 증가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무지출 챌린지를 검색하면 가계부 사진을 올리고 하루에 한 푼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증하는 게시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자가 만난 청년들은 자신의 소비 습관을 돌아보면서 무지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올해 3월부터 무지출 챌린지를 시작해 6개월째 도전 중인 직장인 김모씨(23)는 "이대로 살면 미래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씨의 월급은 평균 200만원 후반대. 특히 작년에 자취를 처음 시작하면서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었고 생활비가 200만원을 훌쩍 넘어버렸다고 했다.

무지출 챌린지를 시작한 지 2개월이 다 돼간다는 안모씨(27)는 다른 사람들이 챌린지하는 것을 보면서 도전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안씨는 "경제활동을 시작한 뒤부터 단 하루도 무지출이었던 날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집에만 있는 날도 흔한 로켓 배송이 쉬지 않았고 출근하면 굳이 카페로 가서 음료 하나씩 습관처럼 마셨더라"고 했다.

이들은 식비를 가장 많이 줄였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최근 몇 달 동안 아예 배달 음식을 시키지 않았다. 근처 대형마트에서 반찬을 사서 소분해서 먹은 것이 김씨만의 절약 방법이다. 김씨는 "SNS를 끊었고 친구와의 만남을 거의 안 한다"며 "정말 가까운 친구만 두세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잦은 술자리나 친구 관계를 조금 거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로써 오히려 자기에게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올해 1월만 해도 카드값으로 300만원이 찍혔다는 김씨는 극한 절약을 시작한 지난 3월부터 월급의 78%에 달하는 200만원 이상의 금액을 저축했다.

안씨는 자신만의 냉장고 체크리스트 만들기를 무지출 전략으로 내세웠다. 체크리스트를 통해 냉장고 재료를 수시로 확인하고 주 단위로 식단표를 짜면서 주 2, 3회 무지출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안씨는 "그날그날 메뉴 고민이 없어 시간도 절약되고 장 볼 때도 식단표에 꼭 필요한 재료만 사게 되어 썩혀 버리는 재료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 총지출을 평균 70만원으로 줄였다.
고정지출(보험비, 통신비, 관리비 등) 40만원을 빼면 30만원으로만 생활하는 셈이지만 계획적인 소비로 사교 모임, 도서 구입, 관심 있는 수업 듣기 등을 하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김씨는 송도의 바다가 보이는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김씨는 "저렴한 방을 찾아서 살다 보니 3층 이상 높이에서 살아본 적 없다"며 "바깥에서 보일까 봐 늘 커튼을 쳐 놓고 살면서 마음껏 풍경을 보지 못해 답답했다"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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