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통화녹음 협박수단 악용" vs "공익제보·약자신고 사라져" [입장 들어봤습니다]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23 17:57

수정 2022.08.23 17:57

이슈 스테핑
‘동의없는 통화녹음에 징역 10년’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발의
무분별한 통화녹음 허용은 음성권·인격권 침해
개인정보 유출,협박 등 악용 소지 막을 필요 있어
범죄 폭로 위축 우려… 피해자 구제 어려워질것
공익 목적 예외 규정해도 증거 입증 난항 예상
"통화녹음 협박수단 악용" vs "공익제보·약자신고 사라져" [입장 들어봤습니다]
상대방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면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은밀한 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녹음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만큼 공익 제보나 약자의 신고에 자칫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동의를 구하지 않은 통화 녹음이 이미 불법인 만큼 부작용이 없다는 주장도 강하다.

■"상대 동의없는 녹음엔 최대 징역 10년"

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내놨다. 개정안은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여도 상대방 동의를 받지 않으면 녹음할 수 없도록 했다.

이에 더해 대화 당사자 모두의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처벌 조항까지 마련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개되지 않은 곳에서 이뤄진 타인 간의 사적 대화를 녹음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하지만 이는 대화 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의 녹음을 금지한 것이다. 이 때문에 대화 당사자 간 통화나 대화가 무분별하게 녹음돼 음성권 침해라는 말이 나왔었다.

윤 의원은 "통화 녹음이 약자의 방어 수단인 경우도 있지만 협박 수단 등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많다"며 "개인 프라이버시권, 인격권을 침해할 소지가 높은 통화 녹음을 무분별하게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은 당사자 간 대화 녹음에 대해 형사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민사소송에 의해 손해배상을 하게 될 수는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다룬 헌법 제10조에 의해 음성권이 보호받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실행되면 대선 기간 중 공개돼 거센 파장을 일으켰던 김건희 여사의 녹취록 파문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경우, 녹음이나 대화 내용을 공개한 당사자 모두 처벌받게 된다. 통화를 주고받고 이를 녹음했던 기자는 물론, 녹음파일을 전달받아 이를 보도한 기자 역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공익제보, 자기 보호 사라질 우려"

윤 의원의 통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민감한 소송에서 피해자 구제가 한층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문성호 국민의힘 대변인은 자신의 SNS에서 "범죄자는 증거를 인멸하려고 하고, 피해자는 증거를 확보하려고 한다. 증거 확보 수단을 봉쇄하는 이 법안은 피해자를 위한 법인가, 범죄자를 위한 법인가"라고 비판했다.

문 대변인은 "재판이 형사소송법에 입각해 무죄추정의 원칙, 증거주의 재판, 검사 입증책임 원칙이 지켜지면 일반 시민이 평소에 무고가 두려워 녹음기를 켜고 다닐 필요가 있겠는가"라며 "녹취를 하는 것 말고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고 최후의 방어수단마저 빼앗으면 억울한 무고 피해자는 무슨 수로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느냐"고 했다.

국내에서 통화 녹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성범죄와 뇌물죄 사건 등의 경우 다른 증거를 찾기 어려워 전화 통화 내용을 유일한 증거로 제출하기도 한다.

공익 목표 예외안에 대해서도 입증의 난항으로 지금과 같은 녹음이 이뤄지지 않을거란 비판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녹취가 공익에 부합하는 지 입증을 하지 못한다면 무고죄를 받을 수 있다"며 "공익제보나 정당한 자기 보호를 위한 녹음에 면책 방안이 어떻게 마련하는 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의 없는 통화녹음을 금지하는 법안이 발의되긴 했으나 실제 시행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비슷한 형태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7월 김광림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통화녹음 여부를 의무적으로 통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해당 개정안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녹음 여부를 '삐' 소리와 같은 알림을 통해 상대방에게 통지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이미 시행중인 국가도 있어, "개인 음성권 보장해야"

개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미 해외에서 유사한 법안이 시행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해외 국가에서는 상대방의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미국의 13개 주,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가 대표적이다. 영국, 일본 등에선 녹음은 가능하지만 제3자에게 공유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이폰은 통화 녹음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개인 음성권을 보장해 사생활 유출 등을 방지할 필요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동의 없이 녹취가 이뤄질 경우 협박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로 이어지는 등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모씨(38)는 "최근에 사내에서 후배와의 전화 통화를 녹취 하는 등 거의 모든 대화가 저장되고 있다"면서 "직장인 괴롭힘, 성희롱과 같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녹음을 하고 있지만 관련되는 부작용도 많은 것 같다. 아이폰만 봐도 녹음 기능이 없는걸 보면 해외에서도 큰 문제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

법안이 발의돼도 '공익' 목표라는 예외가 있다면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선 제3자가 다른 사람의 대화를 몰래 녹음했어도 공익 등 정당한 목적이 있으면 적법하게 보기도 한다.


2018년 교사의 아동학대를 의심하던 학부모가 자녀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둬 아동학대 정황을 발견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학부모의 녹음을 불법으로 보지 않았다.
아이에게 학대 방어 능력이 부족해 녹음 없이는 범죄 행위를 밝힐 수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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