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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 폭행' 이용구 前차관, 1심서 집유...당시 수사 경찰관은 '무죄'

이정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25 15:24

수정 2022.08.25 15:24

"과다한 합의금 주며 허위진술 부탁"...혐의 모두 유죄 인정
술에 취해 운전 중인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술에 취해 운전 중인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하고 당시 블랙박스 녹화영상 삭제를 요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 전 차관 '봐주기 논란'이 일면서 함께 재판에 넘겨진 당시 수사 경찰관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2부(조승우·방윤섭·김현순 부장판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운전자 폭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차관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전 차관의 폭행 장면을 확인하고도 단순폭행죄를 적용해 내사종결한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당시 수사 경찰관 A 전 경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전 차관이 혐의를 인정한 운전자 폭행 혐의와 증거인멸 교사 혐의 모두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차관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과다하다고 보이는 합의금을 택시기사에게 송금한 점, 그 후 범행 장면이 녹화된 동영상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점 등을 근거로 이 전 차관의 증거인멸 교사 행위를 유죄로 인정했다. 또 택시기사에게 '피해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당한 폭행은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가 될 수 있으니 차에서 내려 깨우는 과정에서 폭행당했다는 취지로 진술해달라'고 허위 진술을 부탁한 점 역시 유죄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이런 부탁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운전자 폭행죄가 단순 형법상 폭행 사건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택시 기사로 하여금 불리한 증거를 인멸하고, 은닉하도록 하는 취지의 교사행위로 평가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범행은 교통사고를 유발해 제3자의 생명, 신체, 재산에 중대한 손해 야기할 수 있는 위험성 높은 범행이라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 이 전 차관은 형사처벌을 면하거나 경감받기 위한 증거인멸 교사 행위로 형사사법 작용의 위험성을 야기하면서 사안은 더 중해졌고 죄질도 더 불량해졌다"고 했다.

다만 "피해자의 피해가 중하지 않고 교통사고 등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은 점,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은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 전 차관의 증거인멸교사 혐의에 대해서는 "범행에도 불구하고 저장된 폭행 동영상 등은 계속 존재하던 상황이었고, 택시기사가 동영상을 삭제한 행위가 수사관들이 폭행 동영상을 확인하지 못했던 것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만한 정황을 기록상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A 경사는 수사종결 전 동영상을 직접 시청했기 때문에 이 전 차관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잘못 처리하는 데 있어 이 전 차관의 범행이 실질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A 경사에 대해서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 경사가 수행한 운전자 폭행 범행 부작위 행위 하나만을 분리해 특수직무유기죄가 성립한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 경사는 택시기사의 휴대전화에 저장돼있던 동영상을 한 차례 재생했을 뿐이고, 택시기사와 말을 주고받으면서 시청해 녹음된 대화를 제대로 듣지 않은 채 영상 위주로 내용을 확인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한 차례 동영상 재생만으로는 이 전 차관의 범행이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지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 경사가 직무수행에 있어 필요한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고, 많은 부분에 있어 무능하거나 불성실했던 것은 맞다"면서도 "결재라인으로 보고받았던 직속상관도 그런 잘못을 바로잡아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오롯이 A 경사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A 경사는 스스로 판단했을 때 필요한 조사는 나름대로 수행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전 차관은 2020년 11월 서울 서초구 아파트 단지 앞에서 술에 취해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목적지를 묻는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또 택시기사와 합의한 뒤 택시기사에게 폭행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해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도 있다.

당시 최초로 신고를 접수한 서초경찰서는 택시기사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며 단순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인 점 등을 들어 이 차관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종결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서초경찰서 A 경사는 폭행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확인하고도 보고서에 '영상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적고 단순 폭행죄를 적용해 내사종결한 혐의(특수직무유기 및 허위공문서 작성)를 받는다.


이후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이 기소할 수 있는 특가법 위반(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는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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