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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컬렉터들이 온다… 지금 뚝섬은 '지붕 없는 갤러리' [K-스컬프처와 한국미술]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25 18:00

수정 2022.08.25 18:00

(7) 2022 한강조각프로젝트 '낙락유람'展
프리즈 서울 맞춰 기획한 야외조각전
K조각 1100여점 세계무대 진출 노크
뚝섬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2022 한강조각프로젝트 '낙락유람' 야외 조각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뚝섬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2022 한강조각프로젝트 '낙락유람' 야외 조각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파라고네(Paragone)는 르네상스 시대에 그림과 조각의 우열을 다투었던 담론이다. 당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조각에 비해 회화가 훨씬 고상한 예술이라는 글을 남겼다. 화가는 귀족의 초상화를 그릴 때 궁중이나 성에서 작업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는데 조각가는 먼지 속에서 힘든 노동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천재의 비교론치고 세련돼 보이지는 않지만 르네상스 시대나 지금이나 조각은 여타의 예술 장르에 비해 작업환경도 열악하고 물리적, 육체적 힘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예술이다

르네상스 시대 걸작의 탄생을 다룬 영화 '고통과 환희'에는 미켈란젤로가 단단한 상체를 드러낸 채 양손으로 굵은 철봉을 휘는 장면이 나온다. 대리석 가루를 들이마시며 돌덩이를 깨서 높이 5m의 '다비드' 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의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 됐던 것이다.

이렇게 조각은 소품 제작도 쉽지 않은데 야외용 대형 조각은 훨씬 더 물리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게다가 야외 조각은 비바람과 태양에 오랜 시간 견딜 수 있는 내구성과 넘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안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제작된 대형 야외 조각 300점과 소품 800여점이 뚝섬 한강공원에 전시된다. 이른바 세계 최대 야외 조각전이다. '낙락유람전'이라는 주제로 9월 21일까지 열리며 소품은 대형 텐트로 된 갤러리에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규모만큼 기대도 크다. 이 전시는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 아트페어의 서울 코엑스 전시 기간에 이루어지는데 세계의 유명 갤러리들과 큐레이터들이 방문하는 기간에 K조각을 보여 주고 세계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세계 최대 조각전은 단지 크기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 규모 뒤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는 K조각의 성장 가능성이다. 이런 규모의 조각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의 조각가들이 그만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인적 자원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제조업이 살아 있다는 실례이기도 하다. 하나의 야외 조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아이템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적 인프라와 문래동이나 을지로 등 곳곳의 장인들 도움이 필요하다. 핏줄처럼 이어진 제조업 생태계가 K조각의 가능성을 받쳐주는 기반이기도 하다. 백남준이 세계적 아티스트로 성공한 이면에는 그의 작업을 도맡아 제작했던 청계천의 한 전기 기술자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코로나 초기에도 경험했듯이 미국이나 유럽은 마스크조차도 만들지 못할 만큼 제조업 기반이 무너진 지 오래다.

K팝에서 시작된 한류문화의 자신감이 예술계 전반에 확산하며 영화와 문학을 거쳐 조각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줄탁동기란 말처럼 K팝의 세계적 성공이 예술계를 자극하고 미술 분야도 이에 호응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계의 창작열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러한 열기가 창작의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미술 시장의 활성화다.
조각은 다른 예술 분야보다 물리적으로 가장 어려운 장르이지만 정작 조각가가 창작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물리적 어려움이 아니라 미술시장의 부재다. 예술은 우리나라의 유망한 성장 동력 중 하나이고 예술적 인프라도 충분하지만 조각의 성장이 더딘 것은 공급은 있되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은 조각미술 시장이 만들어져 K조각이 세계 속의 한류문화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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