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뉴스1) 김동수 기자 = 보슬보슬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시골길이 정겹다. 고요하고 적막한 도로를 한참 달리다 어느 마을 초입에 들어섰다. 마을 곳곳 담벼락에는 아기자기한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담벼락을 따라 좁은 길목을 빠져나가자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만난 김주호 영농조합법인 엔자임팜 대표(43)는 취재진과 첫 만남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환대했다. 귀한 손님이라도 온 듯 마중나와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첫 인사로 악수를 건네자 그의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가득했다. 숱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온 흔적이 오롯이 느껴졌다.
고흥 출생인 그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뒤 4년 동안 광주에서 반도체 회사를 다니며 직장생활을 했다. 30대 초반의 나이로 평범한 삶을 살던 그가 갑작스레 귀농을 결심한 이유는 바로 딸 때문이었다. 갓 태어난 딸이 태열기가 심해지면서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발현된 것이다. 황토방, 한의원 등 치료를 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했으나 증상은 나이지질 않았다.
결국 그는 딸의 치료를 위해 고향이자 청정지역인 고흥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맑은 공기와 친환경 식단 덕분에 딸의 아토피 증세는 수그러들었고 눈에 띄게 호전됐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딸이 차츰 회복되면서 귀농생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그는 본격적인 농사에 돌입한다.
2011년 귀농 후 '엔자임팜'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석류농장을 운영했다. 석류를 직접 재배하고 가공해 석류즙 등을 만들었다. 당시 석류껍질과 씨를 통째로 가공하면서 발생하는 떫은 맛을 줄이기 위해 국내산 배를 사용했다. 비용이 조금 들더라도 최고의 건강 제품을 만들겠다는 소신에서다.
하지만 사업초기 작목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재배관리 기술도 부족한 나머지 지나치게 전정하는 바람에 수확량이 크게 감소하는 피해를 입었다.
"석류농장 한 5년 하다가 망해서…농사를 아는 사람이 농사를 지어야죠. 농사가 쉬운 줄 알았는데 어려워요. 농사 엄청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3년 전남농업기술원에서 추진하는 농촌청년사업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곳에서 배운 전문적인 기술과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하는데 집중했다.
그는 아토피 증세로 고생한 딸을 생각하며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에 대해 고민했다. 과감히 생산과 재배를 포기하고 가공식품에 도전하게 된다. 이때 유기농 원료를 사용한 무설탕 잼을 개발한다. 청정 고흥에서 나오는 딸기와 유자, 블루베리, 무화과 등 친환경 원료와 쌀, 보리, 현미, 찹쌀 등 발효시킨 곡물당을 배합한 가공식품 잼을 탄생시킨다.
처음 2~3년간은 제품 개발하는데 집중했다. 이후 딸이 다니는 유치원에 소량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기농 원료를 사용한 무설탕 잼'은 차별성을 인정받아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행정기관과 언론에서도 무설탕 잼에 대해 다루기 시작했다. 급기야 해외에서까지 조명됐다.
김 대표는 '아빠랑'이라는 브랜드화를 통해 온라인 판매와 마케팅에도 전념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2019년부터 매출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해, 지난해 연매출 20억원대를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지역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엔자임팜은 가공제품 중 잼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음료·스무디·자색고구마 라떼 등의 원료로 활용된다. 공장에서는 딸기와 유자, 블루베리, 무화과 등 원료 선별 작업부터 세척, 농축, 출하 순으로 진행된다. 교반기, 농축기, 용기세척기, 충진기, 진공캡핑기, 살균소독기 등을 갖추고 있어 위생·살균상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딸기 등 각 원료마다 유형이 달라 배합량도 다르다. 딸기의 경우 딸기 80%·곡물당 20%, 유자는 유자 30%·곡물당 70%로 만들어진다. 각 원료의 특성에 따라 최상의 비율로 곡물당과 배합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아빠랑 잼'은 정부기관 인증으로 신뢰성까지 더하고 있다. 국내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HACCP), 유기가공식품인증, 전통식품인증, 무설탕 잼 특허 등을 인정받았다. 현재 백화점과 학교 급식, 유기농매장 등에서부터 미국, 중국, 두바이, 네덜란드, 대만 등 해외 수출까지 하고 있다.
곡물당은 일반 설탕과 달리 쌀에서 추출한 당이다. 곡물당으로 기능성 제품을 만들고 있다. 두뇌와 건강에 좋은 제품 '장원급제', '메이데이' 등에서 주성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약국 등 전국 각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김 대표는 지역에서 기부활동을 많이 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장애인 단체나 노인복지시설을 찾아 매년 기부금을 전달하고 있다. 금액은 대기업 사원 연봉에 달하는 수준이다.
엔자임팜은 3명이던 직원 수가 현재 11명까지 늘어났다. 회사 매출과 인력 등 규모도 그만큼 성장했다. 고흥에서 나온 친환경 원료가 판로의 비결이라는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지역 사랑', '청정 고흥'이라는 말을 수차례 언급하며 관에서 시설 장비·인건비 지급 등 지원이 잘 이뤄진다는 데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과거와 다르게 귀농귀촌에 대한 지원과 혜택도 많아진 게 사실이다. 그만큼 기준도 까다로워졌다"며 "농사를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농업을 쉽게 생각하고 도전해선 절대 안 된다는 당부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공제품은 생산량이 늘수록 억대 고가의 설비를 계속 사들여야 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면서도 "사회적 기업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지역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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