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제약

[약전약후] 우리 약 하나 없던 일제강점기…국민 아픔 달랜 '연두색 국민연고'

뉴스1

입력 2022.08.28 07:00

수정 2022.08.29 09:17

안티푸라민 연고(1961년)
안티푸라민 연고(1961년)


유한양행 '안티푸라민' 제품군
유한양행 '안티푸라민' 제품군


(서울=뉴스1) 김태환 기자 = 녹색 철제 캔에 그려진 간호사, 그안에 든 연두색 연고. 중장년 층에게 익숙한 소염진통제 '안티푸라민'의 모습이다. 이 약은 그 옛날 배가 아프다 하면 배에, 코 감기가 걸리면 코 밑에 발라줬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오랜 시간 국민 상비약을 대표하고 있다.

이 안티푸라민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3년이다.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의약품을 일본 등에서 수입해 사용해야만 했다. 약은 그야말로 금 같이 귀했고, 가벼운 부상이라도 당하면 몇날 며칠을 참고 견뎌야 했다.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부인 호미리 여사는 이러한 현실에 우리 국민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 개발을 유 박사에게 건의했다. 호 여사는 미국에서 동양인 여성 최초로 의사면허를 취득한 재원으로 당시 국내에서 소아과를 운영했다.

유 박사는 이러한 부인의 뜻에 따라 '멘톨', '캄파', '살리실산메칠' 등 관절염과 근육통 완화에 사용할 수 있는 안티푸라민을 개발했다. 완성된 제품은 유한양행(1926년 설립)을 통해 전국민에 선보였다.

약이 귀했던 시절인 만큼 하나의 약이 나오면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유일한 박사는 이러한 점을 경계하고, 이례적으로 1930년대 신문 광고에 '사용 전 의사와 상의하라' 등의 문구도 넣었다.

실제 안티푸라민이라는 제품명에는 의약품의 사용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 유일한 박사의 생각이 담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안티푸라민은 '반대'라는 뜻의 '안티(Anti-)'와 '불태우다, 염증을 일으키다'는 뜻의 '인플레임(Inflame)'을 더한 이름이다.

본래 효능이 염증과 통증 완화지만 국민들은 안티푸라민의 다른 효과를 찾아내면서 국민약을 만들어갔다.

지금까지도 중장년층에서는 안티푸라민을 피부가 텄거나 가려울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근거 없는 사용법일 것 같지만, 사실 안티푸라민에는 다량의 바셀린 성분도 함유돼 보습 효과도 있다.

이처럼 일반 가정에서 많이 사용되고 사랑받아 온 안티푸라민은 사람으로 치면 올해 '미수(米壽)'를 넘긴 출시 89주년을 맞았다. 장수의약품이지만, 세대와 환경에 맞는 변신은 현재진행형이다.

외형도 지난 1961년 녹색 철제 캔에 간호사가 그려진 형태로 디자인을 변경한 후 사용과 보관 편리성을 위해 현재의 모습인 플라스틱 용기에 '트위스트 캡(돌려서 여닫는 뚜껑)' 형태로 바뀌었다.

이후 유한양행은 지난 1999년 로션 타입의 '안티푸라민S로션'을 출시하면서 100ml 용기에는 지압봉을 부착하는 새로운 모습도 선보였다.
환부에 약물을 펴 바르면서 마사지도 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2010년대에는 스프레이 타입의 '안티푸라민 쿨 에어파스', 동전 모양의 '안티푸라민 코인플라스타', 필요한 만큼 손으로 잘라 쓸 수 있는 롤파스 등으로 제품군을 다양하게 확대했다.


최근에는 '안티푸라민 손흥민 에디션' 제품을 출시하고 손 선수가 출연하는 콜라보 '유튜브(Youtube)' 영상을 공개해 중장년층은 물론 청년층 인지도도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