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국격에 걸맞은 보훈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28 19:19

수정 2022.08.28 19:19

[특별기고] 국격에 걸맞은 보훈
지난 7월 27일 나는 미국 워싱턴DC 내셔널몰에서 열린 '추모의 벽' 준공식에 참석했다. 72년 전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다 산화한 한국전 미군 전사자 3만6634명과 한국 카투사 전사자 7174명의 이름이 함께 각인된 '추모의 벽' 준공식에 정부 대표로 대통령 축사를 대독하고, 긴 세월 깊은 슬픔과 그리움을 견뎌온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행사 내내 "대한민국 같은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중요한 외교자산인 동시에 대한민국 국격을 높이는 '보훈외교'의 중요성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의 보훈제도와 문화였다.
우리나라 보훈처에 해당하는 '제대군인부'는 국방부 다음 두 번째 규모의 위상을 자랑했고, 워싱턴DC 보훈병원 직원만 2400명일 정도로 미국 보훈병원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네트워크를 가진 의료체계를 갖고 있었다.

미국은 군인과 예비역에 대한 예우문화가 잘 잡혀 있기로 유명하다. 거리에서 군인을 만나면 "Thank you for your service(당신의 노고에 감사한다)"라고 감사를 표하고, 스포츠 경기 중 제복근무자의 시구, 시축, 의장대 공연이 관객들의 호응 속에 이루어진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을 존중하는 미국의 보훈문화가 오늘의 강한 미국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전쟁을 경험한 주요 선진국은 보훈부처를 장관인 '부(部)'로 운영한다. 국가정체성 확립 그리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정책적으로 '부(部)'로 운영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1961년 군사원호청(軍事援護廳)으로 출발해 시혜적 개념인 '원호(援護)'에서 국가를 위한 희생에 합당한 '보훈(報勳)'으로 발전했고, 현재 장관급 '처(處)'로 업무영역과 중요성도 매우 커졌다. 참전 제대군인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외국과 달리 '독립·호국·민주'의 근현대사 흐름을 아우르고, 소방·경찰공무원 등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 영역까지 포함한다. 특히 최근에는 '보훈외교'가 공공외교의 새로운 영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처럼 중요성이 커졌지만 권한은 60년 전 '원호청' 시절에 머물고 있어 국무위원이 아니며, 부령(部令) 발령권도 없는 등 한계가 많다. 22개 유엔참전국 대상으로 각국 보훈부 장관과 동등한 지위에서 정부대표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도 난관이 많다. 참전국 방한 접견, 현지 위로행사, 보훈부 대표 면담에도 상대국과 의전 문제로 원활한 외교활동에 한계를 보였으며 목숨 바쳐 참전한 유엔 참전국과 참전용사에게도 보훈을 홀대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이제 정부 차원에서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가칭)로 격상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선진국에서 보훈부처의 위상이 높은 것은 국가를 위한 희생을 어떻게 대우하는지가 그 나라의 국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보훈의 높은 위상은 강한 안보로 이어진다.
"보훈과 국방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와 맥을 같이한다. 확고한 보훈체계와 문화는 국가정체성과 국민통합의 힘으로, 경제·안보 등 공동체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보훈은 강한 국가를 만드는 주춧돌이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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