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긴급조치 9호 피해자, 국가가 배상해야"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8.30 18:03

수정 2022.08.30 18:03

대법, 7년만에 판례 뒤집어
유영표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 대표가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유영표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 대표가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1970년대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자 불법 행위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지난 2015년 "긴급조치를 발동한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책임만 있을 뿐, 국민의 권리에 대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는 대법원 판례가 깨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A씨 등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전합은 긴급조치 9호 발령과 집행은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다하지 못해 그 정당성이 결여되는 것으로 판단, 국민 기본권이 침해된 손해에 대해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현재 하급심이 진행 중인 긴급조치 9호 관련 재판에 새로운 대법 판례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 초 기준으로 진행 중인 긴급조치 9호 관련 사건은 대법원 24건, 하급심 9건 등으로 추산된다.

A씨 등은 지난 1970년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고 형을 복역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당시인 1975년 제정된 '긴급조치 9호'는 이른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비방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규정으로,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했다. A씨 등 사건 본인과 그 가족들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행위 또는 긴급조치 제9호에 근거한 수사 및 재판이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2013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긴급조치 9호를 두고 2013년 전합은 긴급조치 9호에 대해 "민주주의 본질적 요소이자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등을 심각하게 제한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위헌·무효" 판결을 내렸으나, 2015년 대법원은 이에 대한 국가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2015년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긴급조치 발동한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책임이 있을 뿐 법적 의무는 없다고 결론냈다. 긴급조치권 행사는 정치적 성격을 띤 국가 행위로, 민사상 불법행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 판례를 근거로 이 사건 하급심은 A씨 등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은 "대통령의 긴급조치 제9호 발령이 그 자체로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그에 근거한 수사와 재판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없다"고 했다.

2심 역시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전합은 국가배상 책임 인정을 다수 의견으로 채택했다.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임이 명백한 이상,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 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고, 그로 인해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복역함으로써 받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 전합 판단이다.


전합은 "이 사건과 같이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작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 국가배상 책임의 성립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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