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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어느 일본 외교관의 부고

특파원 칼럼
조은효 도쿄특파원
[재팬 톡] 어느 일본 외교관의 부고
한국과 오랜 세월 인연을 맺었던 일본 외교관이 있다. 지난 21일 암 투병 끝에 별세한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전 부산 총영사가 주인공이다. 올해 봄 위독한 상태로 일본으로 긴급 이송될 당시 마지막 보직은 주솔로몬제도 일본대사다. 향년 65세.

만난 횟수는 많지 않으나 매우 온화했으며,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사람에게도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만남의 횟수와 깊이로 볼 때 오랜 지인들에 비할 바는 아니니 이 글은 작은 기억 조각 하나를 덧대는 정도일 것이다.

그가 부산 총영사로 근무하던 2017년 1월 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로 당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일시 귀국명령이 떨어졌다. 사석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산케이신문에 마치 정권에 반기를 드는 양 보도됐고, 그길로 경질됐다.

"부산은 의인 고 이수현씨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죠. 일본에 부산을 더욱 많이 알리는 것도 내 임무입니다." 2016년 7월 총영사 부임 한 달, 지역의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밝힌 포부는 미완의 과제로 남겨졌다.

2017년 1월 일시 귀국 상태에서도 고 이수현씨의 기일을 앞두고 추모객이 몰리는 당일이 아닌, 전날 조용히 사고장소인 신오쿠보역을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외무성 '코리안스쿨'의 일원이었다. 1980년대부터 한국에서만 네 차례 근무했다. 모두 13년이다. 일본 총리가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의 주인공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통역을 맡았다. 김영삼 대통령과의 한일 정상회담은 물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3자 정상회담 영상에서도 젊은 시절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의 통역은 박진 외교부 장관이었다.

1990년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의 방북,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방북, 북일 비밀협상에도 참여했다. 한국과는 멀어진 채 외무성 복리후생실장으로 재직했던 2020년 2월, 도쿄의 한 식당에서 만났을 때 그가 이런 얘길 들려줬다. "베이징 근무 당시 탈북자를 도왔는데 그가 내 이름도 알지 못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수년 동안 수소문했다더라. 지금은 일본 어딘가에서 식당을 한다"며 미소지었다.

동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고인의 뜻이 강했다고 하나 장례식(26일)에는 외무성 전·현직 한반도 담당 등 40~50명이 참석했다.

그의 별세 소식 이후 서형원 전 주크로아티아 대사가 자택을 방문했지만 주일한국대사관에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단다.
아쉬운 대목이다. 일본 외무성, 한국 외교부 내에는 그처럼 민감한 양국 관계 속에서 한발 잘못 내디딘 실수로, 또는 바뀐 시대의 잣대로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양국 외교관이 여럿 있다. 대통령 특사단 방일이나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의 포토세션도 중요하겠지만 외교도 사람의 일인지라 오랜 세월 한반도 문제를 담당했던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했으면 좋았을걸 싶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