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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폰지사기" 76조 손실에 노후불안 폭발했다

강구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01 10:23

수정 2022.09.01 10:52

美긴축·스태그플레이션·저출산 '삼중고'
80년생까지 연금제로설에 MZ세대 격앙
정치논리 휘둘린 '전주연금' 시장과 괴리
올 상반기 누적수익률 -8%를 기록한 국민연금 /뉴스1
올 상반기 누적수익률 -8%를 기록한 국민연금 /뉴스1

[파이낸셜뉴스] 국민연금이 올해만 76조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 상반기 누적 수익률만 -8.00%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 초저출산에 운용손실까지 삼중고다. 당초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보험료를 잘 운용해 낸 수익으로 연금 지급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러나 MZ(1980년~2000년대 초 출생) 세대 일각에선 "국민연금은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다. 왜 많이 누린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해 희생해야 하나"라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000조는 커녕 800조대 된 국민연금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시장가격 기준 국민연금의 적립금은 882조6540억원으로 900조원대가 깨졌다. 지난해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22년 1000조원을 넘어 설 것"이라고 했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지난해 말 기준 적립금이 948조7190억원인 것을 고려하면 올해 6개월 새 66조650억원이 증발한 셈이다. 보험료 수입금을 제외하면 순손실금액은 76조7000억원까지 늘어난다. 5월 말 기준 적립금 912조3550억원과 비교하면 한 달 새 29조7010억원이 증발했다.

자산별 수익률을 살펴보면 국내 주식이 -19.58%로 가장 저조했고, 해외 주식(-12.59%), 국내 채권(-4.85%), 해외 채권(-1.16%) 등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대체투자만 7.25% 수익을 기록했다.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수익률이 저조한 것과 관련 전 세계 주식·채권의 동반 약세로 손실폭이 커진 것으로 분석했다. 가파른 물가 상승과 공급망 문제가 부각되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으로 통화 긴축에 나선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연금 부문별 운용 수익률 /그래픽=정기현 기자
국민연금 부문별 운용 수익률 /그래픽=정기현 기자

美긴축 후폭풍 이제 시작... 수익률 전망도 암울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일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관측되는 데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시사하면서 신흥 시장인 한국 등 국가의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장기간 줄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어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한국의 환율과 물가, 금리 등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더욱 자극 할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지만 한국 시장 투자 비중이 여전히 높다. 달러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더 높은 금리까지 준다면 국제 금융자본이 신흥시장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진다. 국민연금의 추가 손실도 예상되는 배경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스태그플레이션 경험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올해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2%대 초반까지 떨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키도 했다.

5년째 출산율 0%대의 ‘초저출산'도 국민연금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부분이다. 미래세대의 수가 늘어나거나 소득 수준이 크게 늘어나야만 국민연금이 받을 보험료 규모가 늘어난다. 하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59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압도적 꼴찌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0.5명 수준까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2018년 제4차 재정 추계에선 국민연금은 2042년 적자를 내기 시작해 2057년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됐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년 자체 실시한 추계에서 2039년 적자 전환, 2055년(1990년생) 기금 고갈을 내다봤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일 국회에서 "연금 고갈 시기가 2049년까지 앞당겨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생을 넘어 1980년생까지 받을 연금이 없다는 '연금제로설'에 무게가 실리는 부분이다.

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했던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현재 국민연금의 자산운용 결과는 가지고 있었던 포지션에 따른 결과다. 최근 3년 간은 수익률이 괜찮다가 역사상 최대 수준의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데 포지션에 대해 재검토 할 여지가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후 13년 간 견조한 성장세를 보여왔는데, 현재 상황이 단기적 등락인지 국제금융 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지 충분한 분석, 검토가 있어야 한다"며 "이런 상황이 몇년 간 지속되면 현재 국민연금은 체계 자체가 불가능하다. 과거 활황이 예외적인 상황 일수도 있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듯이 장기불황 시나리오에도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 독립은 '말로만'

강면욱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국민연금의 고갈은 사실이고 시간의 문제다. 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 등 독립이 그동안 '말'로만 거론돼왔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보험료를 낸 가입자 중심이 아니다. 기금운용위원회에 지역가입자단체 등에서 추천한 인사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각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이 추천되는 일이 대부분인 것으로 평가된다.

현행 국민연금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을 보면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며 당연직 위원으로 주요 정부 부처 차관 4명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참가한다. 이외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 위원, 지역 가입자 대표 등도 참여한다. 운용 전문가 없이 정부 인사와 각 이해관계 대표자 위주로 구성된 것이다.

기금위는 산하에 실무평가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평가위원장 역시 복지부 차관이 맡는다. 의결 기구부터 실무 조직까지 복지부가 쥐고 있다. 기금운용위뿐 아니라 산하 위원회 위원을 추천 받아 임명을 결정하는 것 역시 복지부 권한이다.

전주에 기금운용본부.. 시장 소통 불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기금운용본부가 전주에 있는 것도 독립성을 해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 국민연금 기금운용역 출신은 "대체투자 특성상 시장과 밀접한 소통이 중요하고, 딜을 발굴 할 수 있는 기회가 중요하다"며 "서울로 간혹 출장을 가기도 했지만 물리적인 어려움이 늘 있었다. 코로나19로 미팅 등이 제한된 상황에서 결국 퇴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앞서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전북 전주시병 의원은 2017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시절 “기금운용본부를 전주로 이전시킨 장본인”이라며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회사는 미국의 중부 네브래스카주 인구 40만의 ‘작은 시골 동네’ 오마하에 있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기금 캘퍼스(CalPERS)가 있는 새크라멘토도 인구 36만명의 작은 도시”라고 말한 바 있다.

김 의원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은 서울이 아닌 전주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국민연금이 단기투자보다 중장기투자에 주력하는 만큼 오히려 지역이 더 기금의 성격에 부합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 벤처투자 신화로 잘 알려진 한킴(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홍콩에서 만난 외국투자자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주에 있는 것이 가장 이해가 안된다는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외국투자자는 “국민연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연금 중 하나다.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서울에 위치해 많은 펀드 오브 펀드(재간접투자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기금운용본부장(CIO) 임기는 최소 5년은 되어야 제대로 하는지 못하는지가 파악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그는 “아무 대답을 못했다”며 “작은 스타트업들도 서울 내에서 이전 할 때 최고 좋은 사람들을 데려오기 가장 유리한 장소로 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와 같이 중요한 곳은 최고의 사람들이 들어오기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었으면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언급했다.

기금운용본부 독립을 위한 방안은 그동안 꾸준히 나왔다. 공사화가 대표적이다. 2004년 당시 정부가 기금운용공사 설립안을 처음 제시했고 2007년에도 보건복지부가 기금운용체계 개편안을 내놓은 바 있다. 두 방안 모두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고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독립상설기관으로 만드는 한편 기금운용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닌 민간위원장으로 바꾸는 지배구조 개편이 골자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공적연기금 전문운용기관으로 신설되는 가칭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를 방안으로 제시했다. 기금운용의 효율성과 독립성을 높이려면 지배구조를 민간전문가 집단으로 재편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런 만큼 하부 집행조직도 독립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 위원은 "독립된 전문운용기관은 탄력적으로 조직을 구성하거나 운영할 수 있어 국민연금이 해외법인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대체투자를 포함한 이질적 자산에 대해 자회사 형태의 분사 등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다"며 "민간 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채용 및 보상 체계를 갖춤으로써 기금운용에 가장 핵심적인 역량 있는 운용 인력의 확보도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강 전 본부장은 "연금청을 만드는 등 조직을 정비해 운용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운용역 성과평가 시스템을 연단위에서 장기로 하는 것도 방안"이라며 "다만 현재 국민연금은 항공모함처럼 덩치가 너무 크다. 스타플레이어 운용역이나 단기적인 판단으로는 수익률을 크게 높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인식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직무대리)은 "현재의 자산배분 방식을 유지한다면 결과는 정해져 있다. 자산배분 체계와 벤치마크(BM)가 적합한지는 고민해봐야 한다"며 "(현재의 자산가치 폭락세를) 투자의 기회로 삼는 것도 좋다.
상황이 어려워지면 기회는 온다"고 말했다.

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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