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서영 기자 = 만 70년 127일. 영국 군주 중에서는 최장, 세계 역사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 통치한 군주가 8일 오후(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96)은 올해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를 치르는 등 하나하나의 행보가 역사 그 자체였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30분 버킹엄궁은 조기를 계양해 여왕의 서거를 알렸다. 전 세계가 즉각 애도의 뜻을 밝힐 만큼 70년 간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맡아온 진정한 리더였던 것이다.
◇영국의 최장수 리더…15명 총리와 함께 국가에 ‘헌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헌신’일 정도로 그는 왕실과 국민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1952년 스물여섯의 나이로 영국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인 영연방의 여왕에 즉위했다. 이후 70년간 여왕의 지위를 유지한 엘리자베스 2세는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영연방의 군주로 기록됐다. 기존 최장 기록인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63년 7개월였다. 지금 영연방에 포함된 국가는 영국·호주 등을 포함해 54개국이다.
이는 영국 군주로서는 최장, 세계 역사에서는 두 번째로 오래 통치한 것이다. 역사상 최장 재위 군주는 4세에 등극해 72년간 통치한 프랑스 루이 14세다.
여왕 즉위에 앞서 21살의 공주로서 엘리자베스는 영연방에 봉사하기로 서약했다. 여왕으로서 그는 약 2만1000개의 약속을 이행했고 4000개의 법안에 대해 왕실 승인을 했으며 112개의 외국 국가 원수들의 국빈 방문을 주최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주최한 국빈 방문 중에는 에티오피아의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1954년), 일본의 마치노미야 히로히토 국왕(1971년),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1991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2011년) 등이 있다.
여왕 재임 기간동안 총리가 총 15번 바뀌었다. 그의 첫 총리는 윈스턴 처칠(1952년)이었고 마지막 총리는 지난 5일 임명된 리즈 트러스 총리였다. 그는 통상 매주 버킹엄 궁에서 총리와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
◇100개 이상 국가 여행 영연방 국가 150번 이상 방문한 ‘글로브트로터’
재임 기간 여왕은 영연방 국가를 순회하며,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는 데에 힘썼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00개 이상의 국가를 여행했고 영연방 국가들은 150번 이상 방문했다.
캐나다에는 22번을 방문했고 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프랑스를 13번 찾았다. 89세의 나이에 이르러 해외여행을 중단하기 전까지 42번의 세계일주를 했을 만큼 여왕은 세계여행가를 뜻하는 ‘글로브트로터’였다.
여왕의 방문이 역사가 된 순간도 있었다. 1965년, 당시 서독 방문은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전쟁의 종결을 상징하는 외교 행사가 됐다.
또 2011년, 옛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공화국을 방문해 해묵은 갈등 봉합에 힘썼다. 당시 여왕은 “우리가 모두 지난 역사 속에서 과도한 고통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슬프고 유감스럽다” 했다.
여왕의 여행 자체가 역사의 ‘첫 기록’이 된 순간들도 있었다. 1996년 여왕은 중국 본토를 방문한 최초의 영국 군주가 됐다. 또 워싱턴 하원에서 연설한 첫 번째 군주였다.
1997년 버킹엄궁 웹사이트를 개설했고 2014년에는 첫 트위터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3년 전에는 인스타그램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1976년 3월26일 국방부 연구시설을 방문해 첫 이메일을 보내는 등 온라인 상에서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남긴 셈이다.
◇200개 이상 초상화, 120만장의 카드, 영화 출연 등 다채로운 기록도 남겨
여왕은 실생활에서도 잔잔한 기록들을 남겼다. 일례로 여왕은 7살 때부터 200개 이상의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했다. 대부분 전통적인 스타일로 그려진 초상화들이다.
여왕은 또 100세 이상 노인들에게 약 30만 장의 축하 카드를 보냈고 결혼 60주년을 맞은 부부들에게 90만 장 이상의 축하 카드를 발송했다.
여왕 스스로도 73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도 했다. 남편인 필립공은 지난해 4월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왕은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개회식 때도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와 함께 헬기를 타고 주경기장에 나타나는 설정의 동영상으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여왕은 영화 ‘007′을 패러디해 본드걸로 변신했다. 제임스 본드 역 대니얼 크레이그의 호위를 받으며 낙하산을 펴는 듯한 퍼포먼스로 스타디움에 깜짝 등장했다. 권위적인 왕실 이미지를 깬 파격 퍼포먼스에 대중은 뜨겁게 환호했다.
뛰어난 유머감각으로도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여왕이 1991년 크리스마스 메시지에서 남긴 말이 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맙시다(Let us not take ourselves too seriously).” 70년을 사랑받은 여왕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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