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정치와 법치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21 18:09

수정 2022.09.21 21:45

[노주석 칼럼] 정치와 법치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대통령 부부와 야당 대표 부부, 여당의 전 대표가 사법리스크 수렁에 빠졌다. 법원과 검찰·경찰에 정치를 전당 잡힌 격이다. 이런 총체적 사법리스크를 또 겪은 적이 있었나 싶다. 국민의 가슴을 멍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25~35%의 지지율론 대통령 자리를 지킬 순 있지만 새로운 어젠다를 추진하는 것은 어렵고, 일상적 행정이나 외교 업무를 할 정도라고 본다.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자칫 의원직을 잃을 수도 있다. 부인 김혜경씨는 경찰서를 들락거리고 있다.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 대표의 재판 결과에 따라 대선 때 받은 국고지원금 434억원을 토해내야 할 판이다. 민생은 뒷전인 채 대표 방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임기간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윤 대통령을 검찰에 고발하는 무리수를 두고,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과 영빈관 신축 해프닝 관여 공세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집권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의 '내부 총질'과 징계를 둘러싸고 난장판이다. 북한의 핵 무력 법제화, 반도체특별법 처리, 미국의 국산 전기차 보조금 배제 같은 나라 안팎의 경제안보 위기 대처엔 속수무책이다. 비대위를 전전하며 법원의 눈치만 보고 있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 둘 다 법조인 출신이란 점이 흥미롭다. 입만 열면 법과 원칙, 공정을 말하지만 정작 본인과 배우자 리스크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의 실종과 법치의 횡행 탓이다. 공자는 세상을 다스리는 이치, 즉 정치란 덕치(德治)라고 정의했다. 나라와 백성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봤다. 반면 법을 통치이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법치(法治)이다. 한비자는 사람의 본성은 악하므로 법률과 상벌로 지배해야 한다고 외쳤다.

춘추전국시대에 정치와 법치는 피 튀기는 사상투쟁을 벌였다. 정치는 신분과 계급 질서를 지키려고 한 반면 법치는 왕족과 권문세족 등 지배계급의 특권을 폐지하는 정치개혁의 수단이었다. 이때 법치는 진보, 정치는 보수였다.

법치와 정치가 재충돌하고 있다. 정치 불신과 법치 과잉이 빚은 필연적 현상이다. 변호사 수는 인구의 0.05%에 불과한데 국회의원 15%가 법률가인 '정치의 법조화'가 한몫했다. 고소·고발과 수사와 기소, 법정 공방이 난무한다. 법조 출신 대통령이나 야당 대표도 법대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정치 지도자라기보다 법률 전문가다운 처신이다.

정치와 법치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논쟁도 부질없다. 영양가도 없고, 정답도 없다. 이 같은 통치이념의 혼란은 민주주의의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정치 실종과 법치 과잉이 뒤엉키면서 협치의 미덕도 온데간데없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법치 이전에 정치가 있었고, 정치에 대한 반성에서 법치가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본디 정치는 대화와 타협, 협상과 합의의 산물이다. 법치를 뛰어넘는 정치의 묘미를 맛볼 길은 정녕 없는 것인가.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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