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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택소노미의 조건' 고준위 방폐장, 윤정부서 첫발 뗄까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9.26 14:00

수정 2022.09.26 14:00

원전, 방폐장 건설 조건부로 K-택소노미 포함
극심한 사회적 갈등 예고..부지선정부터 난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 성산구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김종두 전무의 설명을 들으며 한국형 원자로 APR1400 축소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2일 경남 창원 성산구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해 김종두 전무의 설명을 들으며 한국형 원자로 APR1400 축소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파이낸셜뉴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자력 발전이 포함된 가운데 사용후 핵연료를 처분할 수 있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 착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택소노미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 존재와 그 실행을 담보할 법률 제정'을 단서 조항으로 남겨놓은 탓이다. 다만 지난 40년간 고준위 방폐장 건설을 놓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지 선정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갈등만 40년 '고준위 방폐장 건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7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녹색분류체계 확산을 위한 실천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div id='ad_body2' class='ad_center'></div> /환경부 제공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 7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녹색분류체계 확산을 위한 실천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26일 정부와 원전 관련업계에에 따르면 환경부는 신규 원전과 기존 원전을 2045년까지 한시적으로 K-택소노미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의 개정안 초안을 공개했다.

환경부는 초안을 발표하면서 원전이 K-택소노미에 포함되는 조건으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보유와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를 위한 '문서화 된 세부계획'을 요구한 상태다.

문제는 고준위 방폐장 건설 시도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가 1978년 상업가동을 시작한 후, 1983년부터 사용후 핵연료 영구처분시설 부지 확보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1990년 정부가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을 몰래 건설하려다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백지화됐고, 2004년 전북 부안에서도 방폐장 추진 시도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2003년 당시 전북 부안 위도 주민들이 먼저 부안군의회에 방폐장 유치 신청을 했고, 김종규 전북 부안군수가 산업자원부에 방폐장과 양성자가속기 유치 신청을 했다. 하지만 나머지 부안군민들이 크게 반발했고 사태가 악화되자 같은해 12월 윤진식 산업자원부장관이 사임했다.

이후 정부는 고준위폐기물(사용후핵연료)과 중저준위폐기물(작업복, 기계부품 등)을 분리해서 저장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주민 반발이 덜한 중저준위폐기장을 경주에 건설,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방폐장 건설, 미루면 미래세대에 책임전가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26일 오후 경북 경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2단계 표층처분시설 착공식을 개최했다. 행사에 앞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단계 동굴처분장을 둘러보며 공단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26일 오후 경북 경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2단계 표층처분시설 착공식을 개최했다. 행사에 앞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단계 동굴처분장을 둘러보며 공단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방폐장 건설을 놓고 40년간 갈등을 빚어왔지만 정부와 국회 모두 정치적 셈법에 따라 책임을 미뤄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 부안에 발생한 갈등 이후 정권을 잡은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권 그 누구도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 주무부처인 산업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전 산업계, 과학계가 사용후 핵연료 처분 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해도 정치적 이유로 구체적인 논의를 꺼내지도 못했다.

이러는 가운데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 시설의 포화시점은 코 앞으로 다가 오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맹독성 방사성물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먼저 저장된다. 이후 중간저장 시설에 저장했다가 고준위 방폐장 등 영구처분 시설로 이동하게 된다.

올해 6월 말 기준 각 원전의 임시저장 포화 예상 시점은 고리·한빛 원전 2031년, 한울 원전 2032년, 신월성 원전 2044년, 새울 원전 2066년 순이다. 고리·한빛 원전의 경우 포화 시점까지 10년도 남지 않은 셈이다.

현행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은 중저준위방사성 폐기물 처분, 사용후 핵연료 처분, 원전 해체 등을 감당할 재원 마련과 조직 운영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절차, 유치지역 지원 등에 대한 근거는 포함하고 있지 않다.

다만 최근 국회에서는 고준위 방폐장 관련 논의를 시작한 상태다.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월 31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및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같은 당 김영식 의원도 8월 30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해 9월에는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면 부지 선정까지만 해도 1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 한계가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법안 통과를 통해 구체적 논의가 진행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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