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고양이 대피소 내리친 행위는 동물 학대일까[법정Talk]

이정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03 05:00

수정 2023.03.26 21:59

고양이.(자료사진) /사진=뉴스1
고양이.(자료사진) /사진=뉴스1

편집자 주
법정 안팎에서는 정형화된 '재판 기사'에는 다 담지 못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딱딱한 문장에 다 담기지 못하는 법정 안의 생생한 공기와 법령의 역사, 재판 혹은 판결문 행간에 숨은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여전히 민법상 동물은 '물건'인 현실

[파이낸셜뉴스] 반려동물 300만 가구 시대. 하지만 동물도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지니고,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고 학대나 착취 등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높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이 올해 4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동물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물권'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는 응답은 33%에 불과했습니다.

'동물보호'는 법 조문안에서 여전히 선언에 그칩니다. 동물에 대한 학대 행위를 규정하고 이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법'은 1991년 처음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검찰은 동물 학대 행위에 재물손괴죄를 적용해 기소하고 있습니다. 현행 민법이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반려동물 인구가 늘면서 동물이 '물건'이라는 인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점차 늘고 있지만, 법이 이 같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조항을 신설한다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소관위에 한차례 회부되는 데 그친 채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법원에서 '동물 학대 행위'를 달리 본 1·2심의 판결이 나왔는데요. 밥을 먹던 길고양이에게 우산을 휘두르고, 도망간 고양이가 숨은 대피소를 우산으로 내리친 50대 남성의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 판결입니다. 일각에서는 '사람과 동물은 같지 않다'는 인식을 재확인한 철학적인 판결이라는 의견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동물권행동 단체인 카라가 지난 8월 24일 오전 대구지법 포항지원 앞에서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했다. /사진=뉴시스
동물권행동 단체인 카라가 지난 8월 24일 오전 대구지법 포항지원 앞에서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을 규탄했다. /사진=뉴시스

"폭행의 개념, 사람과 동물 같지 않다"는 법원

5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6월 한 하천 산책로 앞에 설치된 '길고양이 대피소' 앞에서 밥을 먹던 길고양이를 때리려고 우산을 휘두르고, 놀란 고양이가 대피소로 도망치자 대피소를 우산으로 두 차례 가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피소를 나와 달아난 고양이를 쫓아가 때리려 한 혐의도 받습니다. A씨에게는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에게 신체적 고통을 줘 학대했다'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1심은 A씨의 진술과 경찰의 수사보고서 등을 근거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1부(최병률·원정숙·정덕수 부장판사)는 1심을 깨고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의 판결 취지는 이렇습니다. 동물보호법이 정의한 '동물 학대'와 '동물 학대 금지 규정'은 다르다는 겁니다. 선언적 조항에 명시된 동물학대 행위를 했다고 해서 곧바로 처벌로 이어진다고 볼 순 없다고 판단한 건데요. 동물보호법 8조 2항 4호는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동물 학대 금지 규정에는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들어가 있지만,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는 빠져있다"고 봤습니다. '동물에 대해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상해를 입히는 행위에 준하는 것으로서, 상해를 입히진 않았지만 이에 버금갈 정도로 동물의 몸에 직접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그런 것으로 볼 수 있는 신체적 고통을 주는 행위라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에 대한 폭행의 개념과 같이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만약 여기서 길고양이가 사람이라면 어땠을까요? 한 노숙인이 노숙인쉼터 인근에서 밥을 먹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밥을 먹던 노숙인에게 50대 남성이 우산을 휘두릅니다. 놀란 노숙인이 쉼터로 들어가자, 이 남성은 쉼터를 우산으로 내리칩니다. 이 경우, 50대 남성에게는 폭행죄가 인정됩니다. 형법은 폭행의 개념을 상당히 넓게 인정합니다. 사람을 향해 던진 물병에 그 사람이 맞지 않더라도, 폭행죄가 인정되는 식입니다.

전진경 동물권 행동 카라 대표는 "과거 처벌된 사례가 많지 않다 보니 기존 판례들을 바탕으로 법원에서 소극적으로 판단해 가장 안전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A씨가 휘두른 우산에 겁을 먹고 길고양이가 달아나는 일련의 과정은 모두 동물 학대 의도로 이뤄진 것이지만, 과거 처벌 사례도 적지 않은 데다 지나치게 엄격하게 법조문을 해석해 판단하다 보니 이런 사례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유사한 사례는 많습니다. 산책로를 산책하던 중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아지에게 화살을 휘둘러 다치게 한 혐의(동물보호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 B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강아지가 다른 행인들에게도 짖었다', '앞서가던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는 당시 현장 목격자의 진술을 근거로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옆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잠깐 맡긴 강아지의 다리를 수십차례 붙잡아 흔들고, 수건으로 강아지의 몸을 때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해 동물보호법 위반과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또 다른 남성에게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습니다.

'동물학대'에 민감한 국민들 인식과 법 사이 괴리

법원. /사진=뉴시스
법원. /사진=뉴시스

동물권 단체에서는 "더 많이 조사해 더 많이 기소하고, 더 많이 처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사례들이 많이 쌓여야 양형기준을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양형기준에 따라 동물 학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판결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국민들의 인식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신체적 고통 행위(93%) 뿐만 아니라 동물의 질병을 방치하는 것(85%), 꼬리를 짧게 자르는 단미 등 미용 목적으로 신체를 변형하는 것(83%)뿐만 아니라 겁을 주는 행위(79%), 산책이 필요한 동물을 감금하는 것(76%)까지 동물 학대에 대해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변화의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최근 포항 한 대학교 내 풀숲에 쥐덫을 놓고, 고양이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사체를 끈으로 묶어 길거리에 걸어놓거나 휴대전화로 촬영한 혐의를 받는 한 30대 남성은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건을 심리한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3단독 김배현 판사는 "단순히 동물에 대한 범행을 넘어 다수의 사람들을 겨냥해 정신적 충격과 불안·공포감을 야기한 것으로 비난가능성이 높다"며 죄책에 상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동물 학대를 더욱 민감하게 인식하는 국민들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선언적 조항을 담은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현실. '법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선언적 구호는 역설적으로 법이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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