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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게 죽겠다" 연명치료 거부하는 사람들 [죽음을 배우다 '웰다잉' 上]

#.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조모(62·여성)씨는 지난 7월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사전연명치료중단서'를 작성했다. 그는 30대때 자궁경부암에 걸려 투병 생활을 했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이 뭔지 경험한 그는 죽음이라는 말의 무게를 남다르게 받아들였다.
환자와 호스피스들의 교감을 담는 사진가 성남훈의 '누구도 홀로이지 않게' 사진전에 전시된 작품. 2017년 10월 보건복지부 주최. /뉴시스
환자와 호스피스들의 교감을 담는 사진가 성남훈의 '누구도 홀로이지 않게' 사진전에 전시된 작품. 2017년 10월 보건복지부 주최.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그는 완치 후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병에 걸려 긴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난 지인들의 죽음과 남겨진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보면서 '존엄한 죽음'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한 지인의 남편은 당뇨 합병증을 앓다 패혈증으로 의식 불명 상태가 됐다. 의료진이 갈비뼈가 부서질 정도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는데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했으니 그만해라"는 가족들의 말을 듣고서야 멈췄다. 또 다른 한 지인의 조카는 원인 모를 고열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 윤리위원회를 거쳐 연명의료 중단까지 두 달이 걸렸다. 그동안 고액의 치료비는 모두 남겨진 가족들의 몫이었다.

사전의료연명 의향서 작성 4년새 15배 늘어
사전연명치료 의향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올 연말이면 150만명을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사전연명치료 의향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올 연말이면 150만명을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한국 사회에 '좋은 죽음(Well-Dying)'을 고민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살아날 가능성이 낮고 생명 연장에 초점을 두는 연명치료가 환자를 오히려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제정돼 5년째를 맞은 사전연명의료결정제도는 19살 이상이면 누구나 자신이 임종을 앞둘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미리 서명할 수 있다. 연명의료 중단에 서명하면 임종 과정에 놓였을 때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중단할 수 있다.

27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은 지난달 기준 누적 142만2434명에 달했다. 올 연말이면 약 150만명을 넘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된 첫 해인 지난 2018년 10만529명과 비교할 때 4년새 약 15배나 늘어난 수치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는 이들은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작성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직장인 박모(51)씨의 아버지는 최근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인한 폐렴으로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동안 의식이 없었다. 가족구성원들은 논의 끝에 "아버지에게 힘든 치료보다 자연스럽게 보내드리는게 낫겠다"며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했다. 박씨의 아버지는 미리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밝히지 않았기에 박씨는 아버지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 이후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는 "이게 가족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가 싶었다”며 "나에게 있어 좋은 죽음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일단 미리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밝혀야겠다는 생각에 사전연명치료의향서 작성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안티 에이징'에서 '웰다잉'으로

'웰다잉'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도 죽음은 늘 두려운 존재다. 이들은 두려움을 딛고 어떻게 죽음의 순간을 편안하고 의미있게 맞이할 수 있는지 항상 고민한다.

그래서 이들이 찾는 대상은 이른바 '죽음 교육'이다.

강원남 웰다잉연구소장은 지자체 복지관이나 노인회관 등에서 지난 2014년부터 죽음에 대한 강연을 해오고 있다.

교육 내용은 주로 △유언장 작성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법 등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이뤄져 있다.

강 소장이 처음 교육을 시작할 당시에는 '죽음 교육'에 대해 오해를 하거나 편견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면박을 받는 가 하면 교육 30분만에 쫓겨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동사무소로 ‘왜 재수없게 죽는 얘기를 하냐’고 자녀들의 항의가 들어온 적도 있다고 한다. 죽음을 터부시해 엘리베이터 4층도 'F'로 표기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강 소장은 "최근에는 연명의료결정법 제정을 계기로 '좋은 죽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진지하게 임하거나 관심 가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교육에 참여한 수강생들이 "삶을 성찰해보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죽음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등의 후기를 남기는 일도 많아졌다.

높아진 웰다잉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 '죽음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는 기관도 있다.

10년 전 설립된 한림대학교 생사학 연구소도 그 중 하나다.

이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양준석 연구원은 '좋은 죽음'에 대한 관심을 사회적 상황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양 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빠르게 발전하며 초고도화 사회로 진입했지만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초고령 사회로 진입을 목전에 앞두는 등 각종 부작용을 겪으며 '죽음의 질'이 상당히 낮아져 있는 상황이다.

양 연구원은 "안티 에이징을 말하며 죽음을 꺼리던 사회에서 암울한 사회상과 펜데믹 등을 겪으며 죽음도 우리 삶의 일부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의료적 측면 뿐만 아니라 문화·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논의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이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