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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전에 먹었던 계고(鷄膏)는 독(毒)이었지만, 지금은 〇이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08 06:00

수정 2022.10.08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본초강목에 그려진 닭, 인삼, 그리고 곽향
본초강목에 그려진 닭, 인삼, 그리고 곽향

먼 옛날 80세가 넘은 부잣집 노(老) 부인이 있었다. 노 부인은 장이 약해 원래부터 설사가 잦았다. 조금만 음식을 바꿔도 설사를 해서 여간 조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덧 몸의 기운도 허해져 하루하루 견디기가 힘들었다. 노년에 경치 좋은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자 공기 좋고 한적한 마을에 머물고자 했다.
그런데 물을 바꿔서인지 설사가 도졌다.

노 부인이 식사로 하루동안 먹은 것은 죽과 미음뿐이었고 그것도 1홉도 채 되지 않았다. 나이든 몸종이 닭을 삶아서 계고(鷄膏)를 만들어서 먹어 보도록 권했다. 계고는 닭에 몇 가지 약재를 넣어서 고아서 먹는 것인데, 요즘의 삼계탕이나 닭곰탕처럼 만든 것이다. 닭고기는 먹지 않고 그 물만 약처럼 마시는 것이다. 노 부인은 전에도 닭을 먹고서는 소화도 잘 되고 기운이 난 적이 있었기에 그러자고 했다.

노 부인은 몸종을 시켜 계고를 만들도록 했다. 몸종은 묵은 토종닭 한 마리를 잡아 껍질과 근막, 목과 등뼈를 제거하고 단지 날개와 다리 그리고 배 아래의 질긴 살만을 발라냈다. 물 4사발에 다듬은 닭고기와 함께 인삼 10돈, 생도라지 1줄기, 생강 2냥, 계피 5돈, 산사육 20개, 말린 밤 10개를 넣고 약한 불로 2시간 정도 다려서 절반으로 졸였다.

계고에 들어간 재료는 의서에 기록된 대로 넣어서 만든 것이다. 사실 계고는 음식보다는 약에 가까웠다. 하루에 닭 한 마리에 인삼 10돈이면 상당한 양이었다. 노 부인은 이렇게 만들어진 계고를 건더기는 먹지 않고 하루 두 차례 나눠서 한 사발씩 복용했다.

노 부인은 하루에 한번씩 계고를 만들어 오도록 해서 며칠을 지속해서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사는 멈추지 않고 심해졌고 배도 사르르 아팠다. 그래도 노 부인은 계고는 몸을 보하는 효과가 크고 자신처럼 장이 허약한 사람에게 적합하다는 소리를 들은 바 있어서 복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설사는 심해지고 배가 아팠지만 그래도 기운이 좀 나는 듯해서 다행히 계고 덕분으로 생각했다. 다만 ‘내 설사가 심해지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야.’라고 궁금할 뿐이었다.

어느 날 노 부인은 우연히 마을의 의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도중에 노 부인이 오랫동안 설사를 해왔고, 요즘에는 계속해서 계고를 만들어 먹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의원이 진맥을 해보니 활맥(滑脈)이 잡혔다. 활맥은 숙식(宿食)과 담음(痰飮)으로 위장관에 습열이 있어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맥상이다.

“부인, 지금 당장 계고 먹는 것을 멈추셔야 합니다. 부인의 설사병은 계고가 원인은 아닐지라도 지금 이렇게 오랫동안 계고를 만들어 드시니 습열(濕熱)이 심해져서 소화불량으로 인해 설사가 심해지는 것입니다.”라고 일렀다.

그러자 노 부인은 “그러나 나는 이것이 아니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네.”라고 했다. 의원은 ‘환자가 고집을 피우니 어쩔 도리가 없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자리를 떴다.

노 부인은 그 이후로 수개월을 계속해서 계고를 만들어 먹다가 설사가 너무 심해져서 더 이상 어떤 음식이라도 먹는 것이 두려웠다. 계고가 입에 들어가기만 해서 설사가 났다. 어쩔 수 없이 계고를 먹는 것을 중지했다. 계고를 끓은 지도 한 달이 지났고 이후로는 죽과 미음만을 먹었다. 몸은 파리해지고 기운은 너무 빠져서 이제는 방에서 대청마루에 나가 앉기도 힘들 정도였다.

노 부인은 의원을 불렀다. “내가 그 때 자네 말대로 계고를 끊었으면 좋았을 뻔 했네. 지금은 계고를 끊은 지 한달이나 되었지만 배앓이를 하면서 설사가 더 심해서 이제는 물만 마셔도 설사가 나는 듯하네. 약방문을 하나 주시게나.”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나 의원이 진맥을 해보니 맥이 침지(沈遲)했다. 침지한 맥은 속이 냉하고 기운이 없는 맥이다.

의원은 “이제 다시 계고를 드셔 보시지요”라고 했다.

노 부인은 “아니 전에 설사 때는 계고를 먹지 못하도록 하더니, 지금 설사에는 다시 계고를 먹어보라고 하는 것이, 지금 내게 농(弄)을 하는 것인가?”하고 화를 냈다. 그러면서 “내 계고를 먹고서 설사가 더 심해졌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이제 무서워 함부로 다시 먹지 못할 것 같네.”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의원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당시와 지금의 증상은 모두 설사로 불편해 하시는 것은 동일하지만 사실 설사가 문제가 아니라 위장의 기운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계고는 독(毒)이 되었지만 지금의 계고는 약(藥)이 될 것입니다. 전에는 위에 습열(濕熱)이 있어서 계고가 습열을 조장해서 맞지 않았지만, 지금은 비위가 허한(虛寒)한 상태니 이제는 복용해 보시면 차도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력하게 다시 한번 계고를 드셔 보실 것을 권했다. 다만, 계고에 들어 있는 인삼은 절반으로 해서 5돈으로 줄이고 곽향(藿香) 한 줌을 넣어서 고아서 먹되 한번 고아서 하루만에 다 먹지 말고 이틀 동안 나눠서 마시고, 이렇게 먹기를 1주일을 넘기지 말라고 일렀다. 섭취량은 한꺼번에 많이 하지 말고 서서히 늘려가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노 부인은 “내 돈은 충분하니 인삼값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기운이 너무 없으니 인삼은 원래대로 10돈을 넣도록 해 주시게나.”라고 했다.

그러나 의원은 “재력있는 부자라고 해서 필요 이상으로 인삼 양을 늘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부인의 비위는 인삼의 강한 약력을 소화, 흡수시키기에 너무 약합니다. 인삼이 부인의 체질에 맞는다 할지라도 지금으로서는 잠시 줄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체질에 맞는 식품이나 약제라도 증상에 따라서 넣고 빼면서 양을 조절해야 하는 법입니다. 기운을 보하는 것은 단지 닭이면 충분할 것이고, 시간이 지나서 설사가 멎고 소화도 잘 되면 그때는 계고탕 원방대로 간간이 드셔도 좋겠습니다. 참고로 곽향은 배초향(排草香)이라고도 하고 우리말로 방아잎이라고도 하는데, 급만성 장염에 있어 나는 설사를 잡는 특효약입니다. 간혹 설사기가 있을 때는 가볍게 곽향만을 차로 우려서 드셔도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부인은 “아니 그럼 그때 전에 만났을 때 왜 곽향을 알려주지 않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의원은 “그때는 계고를 계속 드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시니, 어느 의원이 환자를 쫓아다니면서까지 약방문을 복용할 것을 애원하겠습니까. 의원과 환자도 만나야 할 때가 따로 있는 법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인 듯 합니다.”라고 했다. 부인은 얼굴이 잠시 붉어지더니 말문이 막혔다.

노 부인은 의원의 말대로 계고에 인삼을 줄이고 곽향을 넣어 먹더니 속도 편하고 설사도 점차 멎었다. 의원이 알려준 방법대로 계고를 만들어 하루에 다 마시지 않고 2~3일 정도 나눠 마셨다. 그렇게 1주일 동안 계고를 순하게 해서 만들어 먹고, 잠시 며칠을 쉬었다고 다시 계고를 만들어 먹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복용하고 나서 설사가 나지 않자 원래대로 곽향은 빼고 대신 인삼 10돈을 넣고 계고를 만들어 먹더라도 설사도 하지 않고 소화도 잘 되면서 기운도 났다.

부인은 ‘제 아무리 체질에 맞는 식품도 증상의 여부에 따라 달리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처럼 자신의 체질에 맞는 식품이라 할지라도 증상과 질환의 종류에 따라서 섭취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만약 섭취를 한다면 어느 정도 양을 어떻게 섭취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이라 할지라도 체질에 맞아야 하며, 설령 체질에 맞더라도 피해야 할 때와 섭취할 때를 구별해야 하는 법이다. 보약(補藥)도 잘 쓰면 약(藥)이지만 잘 못 쓰면 독(毒)이 된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경보신편> 一老婦人年近八十, 而泄瀉四十年支難, 來留瘴鄕, 一日所食飯粥米飮, 未滿一合, 而肌膚如少時. 每日進鷄膏一首, 以支月餘, 予恐鷄膏久服, 助濕添泄, 請其停服鷄膏, 則曰, 非此無以支保. 連進數月, 泄症添重, 故鷄膏不敢近口. 數月後, 泄瀉又爲添重, 要予問之, 勸用鷄膏, 則曰, 向來因鷄古添泄, 其後若服則必添瀉, 今不敢更服. 予力勸更用鷄古, 泄瀉頓減. 盖此脾胃素虛, 濕氣素盛, 鷄古多服, 助濕添泄, 故向來請勿服. 鷄古不服, 脾胃虛而添瀉, 故今來勸服而愈.(나이가 거의 팔십 된 나이든 부인이 40년 동안 설사를 하여 버티기 어려웠는데, 풍토병이 있는 고장에 와서 머무르는 동안 하루에 먹는 죽이나 미음이 1홉이 되지 않았으나 피부는 젊을 때 같았다. 매일 닭을 고아서 한 마리 분을 계고로 만들어 먹으며 한 달 남짓을 버티고 있어서, 내가 계고를 오래 먹으면 습을 조장하여 설사가 심해질까 걱정스러워 계고를 그만 먹으라고 청하였으나 “이것이 아니면 견딜 수가 없네.”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여러 달 연달아 먹고 설사가 더 심해지게 되어 계고를 입에 가까이하지 않게 되었다. 몇 달 후 설사가 더 심해져서 나에게 찾아와 묻기에 계고를 쓰라고 권유하자, “전에 계고로 설사가 더 심해졌고 그 후로 복용하면 반드시 설사가 심해졌네. 이제 함부로 다시 먹지 못하겠네.”라고 말하였다. 내가 힘껏 권유하여 다시 계고를 사용했더니 설사가 현저히 줄었다. 이것은 평소 비위가 허하고 습기가 성한 상태에서 계고를 오래 먹었기 때문에 습을 조장하여 설사가 심해진 경우이다. 그러므로 전에는 먹지 말라고 하였지만 계고를 먹지 않자 비위가 허해져 설사를 더 하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복용토록 권유하여 나은 것이다.)
<의본> 鷄膏. 貧家遇虛症, 而難辦參料, 以此代用. 雖能辦參, 素稟血燥, 肺經有火, 難服參料者, 亦宜. 陳鷄一隻, 去筋膜皮骨及頸與脊, 只取肩脚及腹下堅肉入, 生吉更 一條, 生薑 二兩, 官桂 五戔, 山査 二十箇, 黃栗 十箇. 如法作膏. 材料加減, 全在活法.(계고. 가난한 집안에서 허증 환자가 생기면 인삼과 같은 약재를 위주로 쓰기가 어려우니 이것으로 대신한다. 비록 재력이 인삼을 사용할 만할지라도 평소 타고나기를 혈이 건조하고 폐경에 화가 있으면 인삼과 같은 약재를 복용하기가 어려운 사람에게도 적합하다. 묵은 닭 한 마리를 근막과 피골 및 목과 등뼈를 제거하고, 단지 날개와 다리 및 배 아래의 질긴 살을 넣는다. 생 길경 1줄기, 생강 2냥, 계피 5돈, 산사 20개, 말린 밤 10개를 넣어 방법은 고약을 만드는 것과 같다. 재료의 더하고 빼는 것은 전적으로 활용법에 달려 있다.)
<본초강목> 藿香. 辛, 微溫, 無毒. 風水毒腫, 去惡氣, 止霍亂心腹痛. 脾胃吐逆爲要藥. 助胃氣, 開胃口, 進飮食.(곽향. 맛은 맵고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독이 없다.
풍독이나 수독으로 인한 종기를 치료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며, 곽란으로 인한 심복통을 멎게 한다. 비위를 다스리고, 구토와 구역감에 요약으로 여긴다.
위기를 돕고 위를 열어 주며 음식을 먹게 한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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