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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삿돈 횡령' 우리은행 1심 선고날 법정서 벌어진 공방[법정Talk]

이정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10 07:00

수정 2022.10.10 11:31

[파이낸셜뉴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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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법정 안팎에서는 정형화된 '재판 기사'에는 다 담지 못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딱딱한 문장에 다 담기지 못하는 법정 안의 생생한 공기와 법령의 역사, 행간에 담긴 재판 혹은 판결문 이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민관을 불문하고 대규모 횡령 사건이 많았습니다. 오스템임플란트(2215억원), 계양전기(245억원), 서울 강동구청(115억원) 등 규모도 작지 않습니다. 회사 계좌를 관리하는 직원 개인의 일탈로 시작돼 수백, 수천억원의 회삿돈이 빠져나가는 동안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이 흐르는 동안 회사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 이들 사건의 공통점입니다. 횡령한 돈을 주식·코인 투자 등에 사용한 점도 같습니다.


최근 '614억 우리은행 회삿돈 횡령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우리은행 기업개선부에서 회사 계좌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던 A씨는 동생 B씨와 함께 2012~2018년 세 차례에 걸쳐 수백억원대의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3년과 징역 10년, 각각 323억7000만원씩 총 647억여원의 추징금 명령을 선고받았습니다. A씨에게는 300억원 이상의 횡령죄에 적용되는 양형기준에 '범죄 수익 은닉'과 '범행 수법 불량'이라는 가중요소와 함께 공문서위조와 위조공문서행사죄가 적용됐는데요.

검찰은 최근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조용래 부장판사)에 1심 판결을 파기해달라는 항소장을 제출했습니다. A씨 재판을 1심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는 취지인데요. 대체 그날 법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검찰은 '1심 판결을 파기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 걸까요? 그날 법정에서 오간 이야기들을 정리해봤습니다.

검찰 "구형 기회 달라"...재판부 "기회 이미 부여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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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혐의로 구속기소된 우리은행 직원 A씨와 그의 동생 B씨, 형제의 돈이 범죄수익인 정황을 알고도 투자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16억원을 챙긴 공범 C씨의 1심 선고기일이 열렸습니다.

이날 법정에서는 "구형할 기회를 달라"는 검찰과 "판결 선고하겠다"는 재판부 사이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검찰: 재판장님. 구형하지 않았습니다. 구형할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부: 변론 종결까지 다 했는데, 변론 재개를 허가해달라는 취지와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검찰: 형사소송법에는 검사의 의견을 진술해야 한다고 돼 있지 않습니까.
재판부: 그 기회를 이미 부여했습니다.
검찰: 의견 진술하겠습니다.
재판부: 이유부터 낭독하겠습니다. A씨와 B씨 공동범행입니다. 특정가중처벌법상 횡령의 점입니다...

판결 선고 전 이미 이뤄졌어야 할 구형을 선고 직전 하게 해달라는 검찰과 "안 된다"는 재판부. 그사이 대체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선고기일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달 22일, 검찰은 횡령 금액을 기존 614억원에서 707억원으로 늘리는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합니다. 금융감독원 조사 및 검찰의 보강 수사 결과 추가로 93억2000만원 가량의 횡령이 확인됐다는 겁니다. 여기에 우리은행 명의의 사문서를 위조한 혐의도 추가됐다는 것이 검찰 측 설명이었습니다.

문제는 검찰이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을 하기 전 이미 변론이 종결되고 1심 선고기일이 지정된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재판부가 "변론 종결 이후 공소장 변경 허가는 의무가 아니다"라고 설명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추가로 발견된 혐의는 기존 혐의와 방법·시기 등이 달라 '포괄일죄'(동일한 범죄행위들을 하나의 범죄로 간주하는 것)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공소장 변경과 변론 재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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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재판장 처분에 재량권 일탈과 남용의 위법이 있다"며 즉시 이의를 제기합니다. 검찰 측 주장은 이렇습니다. 추가로 발견된 A씨와 B씨의 범행은 앞서 횡령한 돈을 주식·선물옵션 투자 등으로 모두 쓴 후 이를 복구하기 위한 것으로, 시간적 간격이 다소 있더라도 '추가 횡령 범행을 통해 선물옵션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피고인들의 범의(범죄 행위임을 알고서도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가 단절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대법원은 포괄일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범행 단일성과 계속성 △범행 동기 △각 범행 사이의 시간적 간격 △범행의 단절·갱신이 있었는지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를 두고 재판부는 "방법·시기가 다르다"며, 검찰은 "범행동기와 각 범행 사이의 시간적 간격상 포괄일죄로 봐야 한다"며 각각 다른 입장을 보인 겁니다.

검찰 측은 기업개선부에서 근무하며 회사 계좌와 연결된 통장과 비밀번호, 보안카드 등 접근 매체를 무단 반출한 뒤 직인을 무단 날인하는 등 범행 방법에 있어서도 동일하다고 주장합니다. 약간의 범행 방식의 차이는 "어디까지나 피고인들이 횡령 범행과 그 은폐를 더욱 용이하고 철저하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범행의 계속성을 강화하는 근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겁니다.

"1심 판결 파기환송" 항소한 검찰

우리은행에서 6년 동안 614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직원 A씨가 지난 5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은행에서 6년 동안 614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직원 A씨가 지난 5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의 공소장 변경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구형도 없이 마무리된 1심 선고를 두고서 일각에서는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긴 재판부와 검찰 간 '불협화음'이 낳은 사태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피고인 구속 사건'인 만큼 최대한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려는 재판부와,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검찰 측 사이 미묘한 마찰이 결국 '공소장 변경'을 사이에 둔 갈등 양상으로 드러났다는 겁니다.

'우리은행 회삿돈 횡령 사건' 공판은 피고인이 자백한 사건입니다. 보통 피고인이 공소 제기된 모든 혐의에 대해 자백하는 경우 유·무죄를 다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곧바로 증거조사에서 검찰 측 구형까지 재판이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총 네 차례 진행된 재판은 두 차례나 공전합니다. 첫 기일에는 피고인 측이 "관련 기록을 전혀 보지 못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두 번째 기일에서는 검찰 측이 "증거조사를 다음 기일에 하자"는 이유로 사실상 별다른 절차 진행 없이 재판이 끝납니다.

재판부는 첫 재판이 열렸던 지난 6월 10일 "피고인들 구속사건이라 구속기간 문제가 있으니,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힙니다. 구속기소된 피고인의 1심 구속기간은 원칙상 최장 6개월인 만큼, 이 기한 안에 재판을 보다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셈인데요.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3차 공판이 열린 지난 8월 26일, '추가 기소가 이뤄질 예정인지'를 묻는 재판부에 검찰은 "전달받은 것이 없다"고 답했던 검찰은 돌연 4차 공판이 열린 지난달 7일에서야 "추가기소할 것이 있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당시 검찰이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하지도 않았던 상황이었던 만큼 재판부는 "우선 구형을 한 뒤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하면 내용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검찰이 이를 거부하면서 결심공판에서 이뤄지는 검찰 측 구형 없이 변론이 종결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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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이 '변론 재개'의 근거로 든 범죄 수익 환수와 관련해서도 여러 이야기들이 오갑니다.

검찰은 이미 변론이 종결된 후인 지난달 22일 공소장 변경 허가 신청과 함께 제3자 참가 신청 고지를 하며 "공소장 변경 없이 1심 선고가 나면 범죄 수익을 제대로 환수할 수 없다"는 입장을 함께 밝힌 바 있습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 형제가 가족과 지인 등 총 24명에게 빼돌린 금액은 18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부패재산몰수법)상 제3자에게 전달된 부패자금을 몰수하려면 1심 재판이 있기 전까지 제3자에게 소송 참가 여부를 고지하고 몰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재판은 검찰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피고인의 유·무죄를 따져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위한 절차"라며 "실체를 먼저 확인한 뒤 공식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절차부터 진행한 뒤 실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상황이 진행되다보니 재판부 입장에서는 부당한 압박으로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옵니다.


결국 2020년 서울고법이 피고인들에게 국민참여재판 신청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1심 재판을 원심법원으로 파기환송한 사례를 검토해 "1심 판결을 파기환송 해달라"는 취지로 항소한 검찰. 검찰은 1심 판결을 환송하기 어렵다면 추가 확인한 횡령금 93억원까지 A씨 형제의 공소사실로 인정해달라는 입장입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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