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부정' 16일까지 동숭무대 소극장
오재균 연출 "부정, 세가지 중의적 의미"
오재균 연출 "부정, 세가지 중의적 의미"
연극 '부정'의 주인공인 50대 형사 이도석은 수십년 동안 강력 성폭행범 등 범죄자를 추적해 왔다. 도석은 일에만 몰두 하느라 가정에 소홀했다. 그의 딸 묘희는 어린 시절 길고양이 한 마리를 주워왔지만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엄마 때문에 고양이를 다시 버려야 했다. 묘희는 엄마로부터 "아버지가 고양이를 버렸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에게 소리 지르며 손톱을 드러낸다. 우울증을 앓던 묘희의 어머니는 7살 딸을 남기고 자살했다.
대학생이 된 묘희는 심리치료사와 상담을 한 후 아버지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다. 이도석을 친아버지처럼 따르던 여형사 김인성은 묘희의 담당 심리치료사인 진영을 찾아가 열띤 공방을 벌인다. 평생 성추행범을 쫓아온 선배가 자신의 친 딸에게 성추행을 저질렀을 리 없다는 믿음에서다. 하지만 도석은 심리상담사 진영에게 본인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한다.
도석은 후배 김인성에게 "밥상 머리에서 어제 잡은 성폭행범의 범죄로 한 어린 소녀의 몸이 완전히 망가져버렸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었다"고 회상하며 아내와 딸에게 소홀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후배는 "죄의식 때문에 하지도 않은 일로 처벌 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맞선다.
작품을 직접 쓴 오재균 연출은 "부정은 세가지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며 "인정하지 않고 거부함, 그릇되고 어긋남, 아버지의 정"이라고 설명했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연출은 자칫 잘못하면 진부할 수 있지만 '부정'은 작품 속에 그것을 온전히 녹여 낸다. 극 중에서 부정은 성폭행 전문 심리치료사 진영이 쓴 책 제목(그릇되고 어긋난 행동)이다. 하지만 도석은 성추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 대신 이를 인정한다.
연극의 아이디어는 미국의 범죄 심리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가 쓴 '우리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라는 책에서 출발했다. 1980~1990년대 미국에서 많은 여성들이 심리치료사를 찾아가 어린 시절 부모나 친척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고소하는 일이 급증하자 거짓 기억의 실체를 파헤치며 쓴 책이다.
이 책에선 "'무죄 추정'이 아니라 유죄 추정'의 원칙이 지배하고 있다. (중략) 서른여섯 살 난 딸이 1년 동안 카운슬링을 받은 뒤 저를 성추행 혐의로 고발했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연극 '부정'의 큰 줄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100분 동안 배우들의 숨소리가 들리고, 시선이 겹치는 공연장에서 무대를 직접 보길 추천한다. 4명의 배우 모두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배역이 자연스럽다. 김정팔(이도석역), 강민지(묘희역), 송희정(진영), 하윤(김인성역) 출연. 공연은 대학로 동숭무대 소극장, 오는 16일까지.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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