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김규성의 인사이트] 길트 탠트럼의 경고

김규성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11 18:07

수정 2022.10.11 18:07

[김규성의 인사이트] 길트 탠트럼의 경고
최근 영국 국채 값이 폭락하고 파운드 가치가 추락하면서 '탠트럼(발작)' 공포가 재소환됐다. 시장발작에 영국 국채인 길트를 엮은 '길트 탠트럼'이란 신조어까지 나왔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때의 '테이퍼 탠트럼(taper tantrum·긴축발작)'에 빗댄 것이다. 시장불안은 기업·가계에 막대한 에너지보조금을 주고, 향후 5년간 450억파운드(약 72조원)를 감세한다는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경제회생방안에서 시작됐다. 국채발행을 재원으로 감세를 하고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방안에 시장은 기겁했다. 길트 투매에 놀란 영란은행은 14일까지 국채를 매수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도 열흘 만에 부자감세안을 철회했다. 시장은 일단 진정됐다

'제2의 마거릿 대처'를 지향한다는 트러스 총리는 집권 전부터 감세 등을 공언해 왔다. 대처 전 총리도 세금인하와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폈다. 세금을 줄여 민간투자를 증대시키고, 노동생산성 향상 등으로 영국을 다시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년 0%로 예상되는 경제성장률을 2.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성장목표도 제시했다.

하지만 시장은 냉담했다. 영국의 재정 신뢰도가 낮다는 점을 간과한 게 패착이었다. 파운드는 6대 기축통화 중 하나다. 영란은행과 미 연준은 상시 통화스와프도 맺고 있다. 그럼에도 탠트럼을 막지는 못했다. 파운드 값은 역대 최저치로 추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설까지 나왔다. 지난해 말 현재 영국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30.9%, 재정·경상수지 적자규모는 -10.6%로 이탈리아(-3.9%)보다 높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감세를 하면서) 재정지출도 늘리니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국가채무비율이 오르면서 국제사회가 경고한 것"이라고 했다.

낙수이론에 대한 거부감도 길트 탠트럼에서 확인됐다. 낙수이론은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면 그들이 더 많은 소비와 투자에 나서 경제가 성장한다는 부의 이전효과 이론이다. '대처리즘'과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레이거노믹스'에 이에 근거한 정책이 포함돼 있다. 파운드와 길트 투매는 낙수이론에 대한 시장 외면이란 분석이다. 감세가 기대했던 성장을 이끌지 못하고 재정적자만 키웠다고 본 것이다.

영국발 금융불안은 국가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세금을 줄인다면 성장전략, 재정강화가 정책패키지로 가야 한다. 수출불안에도 올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되는 한국과 영국의 나라곳간 사정은 다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부의 지출을 제어하는 재정준칙이 여전히 법제화되지 않았다. 포퓰리즘 경쟁 또한 만연해 있다.
주요국 통화긴축이 계속되고 글로벌 경기침체 그림자가 짙다. 길트 탠트럼의 불꽃이 어디로 옮겨붙을지 모른다.
시장의 경고를 되새겨봐야 할 때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지면총괄·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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