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 지났지만 복지 사각지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지난 8월 경기 수원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고, 이후에도 안타까운 사연들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이 보내는 위기 신호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여전합니다. 제도나 시스템 자체가 이들을 모두 끌어안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존재합니다. 뉴스1은 절벽으로 내몰린 위기가구를 놓치지 않기 위한 현장의 다양한 시도를 찾아보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서울=뉴스1) 원태성 임세원 기자 = "갈 곳 없어 막막할 때 인연을 맺었어요."
2019년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 되기 1년 전 보호시설에서 나온 A씨(22)가 향한 곳은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청소년도서관 작공'이었다.
18년간 살아온 시설에서 버티지 못하고 아무 계획 없이 세상 밖으로 나온 A씨에게 작공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줬다. A씨는 이곳의 지원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보호종료아동이 된 뒤에는 지원금 수령, 거처 마련 등 이제 막 세상에 나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보호종료아동이 된 지 3년이 지났지만 A씨는 살면서 어려운 일이나 고민거리가 있을 때마다 작공에서 인연을 맺은 선생님들을 찾는다. 그는 여전히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지만 최근에도 작공을 자주 찾아 이곳의 어른들을 만나며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A씨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작공 선생님들은 믿을 수 있다"며 "선생님들은 억지로 상담을 하거나 나를 문제아 취급하지 않고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청소년도서관 작공은 A씨 같은 보호종료아동을 포함해 홀로서기 위해 애쓰는 학교밖 청소년들이 세상에 나가는 여정을 함께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공간이다.
작공은 국가차원에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것을 넘어 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진짜 어른'이 되어준다.
◇ "어른과 신뢰관계 없는 아이들…여행 다니며 신뢰 쌓아"
청소년도서관 작공은 2013년 보호가 필요한 학교밖 청소년들을 위해 마을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지원해 서울 은평구에 마련한 공간이다. 은평구에는 A씨 같은 보호종료아동뿐 아니라 보호시설에서 미리 퇴소하거나 학교를 그만둔 학교밖 청소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다.
작공을 만들 때 함께 한 이미경 은평구 구의원은 "2015년부터 보호종료된 아이들이 600명 정도 되는데 그중 176명이 은평구에 거주한다"며 "이들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실제 가정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와서 상담하고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작공을 처음 만들었다"고 말했다.
작공에서는 검정고시, 영어 수업 등 공부 지원부터 인생특강, 직업탐험, 학비지원 등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지원한다. 특히 세상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작공에서는 다양한 곳을 여행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의원은 "아이들은 평생을 시설이라는 곳에 갇혀있다시피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줄 모르고 어른에 대한 신뢰관계가 없다"며 "새로운 공간, 새로운 어른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도성을 갖게 해 주자는 목적으로 여행을 자주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 작공은 외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이곳에서 관리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나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녀왔다.
이 의원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려하지 않는 아이들도 여행을 가면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며 "이렇게 아이들과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우리는 그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 "작공 관리 인원 20명…지원 통해 더 많은 시설 생겨야"
보호종료아동 등 학교밖 청소년들이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작공이 한번에 관리할 수 있는 인원은 고작 20명뿐이다.
이 의원은 "보호종료아동들이 우리 주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들과 관계 맺기를 하는 어른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며 "은평구에 600명 규모의 보호시설이 있지만 이들이 사회 밖에 나올 때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작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도 차별을 겪는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다"며 "어느 곳에 가든 아이들이 어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들의 지원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작공과 같은 시설을 늘리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예산이 필요하다. 작공의 경우에도 지원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매년 부족한 예산과 씨름해야 하는 상황이다.
작공은 올해 서울시에서 학교밖 청소년 지원조례에 따라 주는 지원금 포함 1억7000만원을 받았지만 이는 시설 임대비를 빼면 교사들에게 생활임금을 주기에도 빠듯한 액수다. 이마저도 서울시가 대안교육지원 조례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며 줄어들 예정이다.
이 의원은 "서울시는 자립수당 등으로 아이들 개개인에게 지원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이는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대응"이라며 "청소년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 즉 회복 탄력성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집중해서 상황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 아닌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게 고민을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정부에서 이러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힘써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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