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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를 넘긴 부부, 그 비결은 진부하지만 '사랑'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조용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13 18:09

수정 2022.10.13 18:09

Weekend 헬스
(8) 백년해로는 꿈 아닌 현실
함양서 만난 106세 남편 - 103세 아내
"우린 물과 물고기…떨어져서 못살아"
伊 오롤리 마을의 부부도 마찬가지
"거짓말 한적 없고 싸운적도 없다네"
혈연 아니어도 '절대사랑' 분명히 존재
백세를 넘긴 부부, 그 비결은 진부하지만 '사랑'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사람이 백세 장수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온갖 간난신고를 다 이겨내어 백살 넘도록 생명을 보존해야만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세인 확률은 전 세계적으로 10만분의 1 정도로 자연계에서 언급하는 돌연변이율에 해당한다. 한편 환경여건이 개선된 선진국에서는 그 확률이 1만분의 1로 크게 높아지고 있으며 장수국가에서는 1만분의 4~5까지 올라간다. 그만큼 인위적 노력에 의하여 장수도가 증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부부를 이루어 함께 백살 넘도록 살아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수인이 많은 미국에서 부부 백세인 비율은 600만쌍 중의 1이라는 보고가 있다. 따라서 결혼식 주례사에 으레 포함되는 "백년해로(百年偕老)"는 간절한 소망인 의전용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백년해로를 이룬 부부들을 만나면서 장수사회의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보게 된다.

우리나라 백세인 조사를 시작하였을 때 대상자가 거의 여성이어서 아쉬움이 컸었다. 왜 남자는 장수하지 못할까 고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지난 20년 사이에 남성 장수도가 증가하여 백세인의 남녀 비가 1대12에서 1대5로 크게 개선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동안 염원이었던 백세부부가 등장할 가능성을 크게 하고 있다.

실제로 개인이 백살 넘도록 산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부가 함께 백살을 이룬다는 것은 이상적인 삶이자 장수사회 최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백세부부를 찾기 위한 노력을 따로 기울였다.

조사 초기 2002년도에 103세 할아버지와 98세 할머니 부부를 제주도에서 찾았다. 당시 백세부부를 한 쌍도 찾지 못하고 있던 차였기에 두 분 나이를 평균하면 100세가 넘으니까 일단 백세 부부로 인정하자면서 대정읍 하모리로 내려갔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도 백세부부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부부는 결혼 80주년을 맞았다. 은혼식, 금혼식, 회혼례 등에 덧붙여 결혼 70주년, 80주년에도 사용할 용어가 만들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승리, 부부승리의 자랑스러운 모습이었다.

이춘관 할아버지와 송을생 할머니는 건강하였다. "할머니, 영감님 사랑하세요?"라고 할머니에게 여쭈자 "저 영감 늙어서 싫어!" 하면서도 영감님 손을 꼭 잡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께도 똑같이 여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하세요." 할아버지는 "허, 저…" 하면서 웃음을 지었다. 긴 세월 동안 어찌 힘들고 어려운 고비들이 없었을까? 그러나 팔십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는 눈빛, 목소리, 어느 것도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다만 할머니가 백세를 채우지 못하고 98세에 작고하여 아쉬웠다.

진정으로 함께 백살이 넘은 부부를 만나지 못하였던 차에 2013년 말 부부가 모두 백살이 넘은 가족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함양군 죽림리를 찾았다. 삼봉산 중턱에 전망이 탁 트인 고급스레 단아한 집에 권병호 어르신(1908~2014)과 김은아님(1912~2015)이 살고 계셨다. 두 분은 각각 106세와 103세를 살아서 나이 합산 209세가 되었다. 그리고 1934년에 결혼하여 81년을 해로한 진정한 백년해로 부부였다. 우리나라 백세인 조사 과정에서 만난 최장수 남성이었고 최장수 부부였다. 두분 모두 인지능력이 온전하였고 건강패턴이 정상이었다. 할아버지는 인터뷰 내내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해방 이후 정부 고위보직도 맡았지만 퇴직하자 고향으로 내려와 산을 사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일제하에서 대학교육을 마친 인텔리였던 권 어르신은 가족 반대를 무릅쓰고 김할머니가 일하는 강원도 산골까지 쫓아다니며 삼년의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한 순애보의 부부였다. 팔십년 동안을 함께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살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내가 있다. 내 아내는 물이고 나는 물고기이다. 물은 물고기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물고기는 물이 없이는 살 수 없다." 첫사랑을 만나 결혼하여 2남3녀를 낳아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시키고 팔십년을 한결같이 사랑을 나누며 살아온 부부의 다복한 모습은 우리나라 장수사회의 등댓불이며 세상에 보내는 거룩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녀 장수도가 같아 백세부부가 많은 지역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사르데냐를 찾았다. 이 지역의 전통 인사말은 "아켄타노스(A Kent'Anos)! 백살까지)"이다. 그곳에서도 남성장수도가 높은 오롤리 마을을 찾아가 백세부부를 만났다. 남편 피라스(Episio Pyras)옹은 101세였고, 부인 실비아는 100세였다. 결혼하여 76년째 함께 살며 자식은 5남매를 두었고 손주 증손주는 너무 많아서 숫자를 모른다고 하였다. 이 분들은 놀랍게도 치아를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피라스 옹은 "돈이 문제지 치아는 문제가 아니야" 하면서 농담마저 하였다. 인지능력, 청력이 온전하였으며, 평생 병원신세 져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살아온 과정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피라스 옹은 "날마다 늙어가는 것이 힘들어" 라며 여유롭게 답하였다. 그에게 장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거짓말 해 본 적이 없어."한편 부인은 "우리는 사랑하고 살았어. 싸워 본적이 없어"라는 답을 하였다. 장수비결이 사랑이었다는 말은 수많은 백세인을 만나본 나에게도 처음 들어본 신선한 자극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백살의 할머니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가정의 평화라네"라고 답하였다. 백년해로의 비밀이 사랑이고 가정의 평화라는 진리를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머나먼 지중해 한가운데 섬 사르데냐에서 배웠다.

백살 넘도록 함께 살아온 부부들은 합계 나이가 이백살이 넘고 함께 살아온 기간이 팔십년이 넘는 특별한 부부들이다. 그러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거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분들의 절대 공통점은 서로 간의 절대 사랑과 신뢰였다.
사람세상에서 절대사랑이 혈연으로 이루어진 부모자식 간이 아닌 남남으로 맺어진 이성 간에도 분명 존재한다는 명백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랑이 꿈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니고 현실이었다.
격변하는 사회구조 특히 부부와 부모자식 간의 가족구조가 변화하고 있는 작금의 추세에 진지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전남대 의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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