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 TSMC는 어떻게 삼성을 제쳤나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17 18:29

수정 2022.10.17 18:29

[최진숙 칼럼] TSMC는 어떻게 삼성을 제쳤나
대만 반도체의 거인 모리스 창 TSMC 창업자(91)는 2018년 6월 물러났지만 여전히 막후 힘을 발휘한다. 지난 8월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대만에 갔을 때 창은 TSMC 회장 마크 류와 함께 펠로시를 만났다.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동맹 새 판을 짜기 위해 미국은 지금 못하는 것이 없다. 대만은 반도체에 자국 안보의 명을 걸었다. 펠로시와 창은 서로에게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창의 고향은 중국 저장성이다.
중일전쟁, 국공 내전 격동의 현대사가 그의 유년기를 관통한다. 가족과 피란생활을 전전하다 홍콩, 대만을 거쳐 1949년 미국으로 갔다. 열아홉살 하버드대생 창은 셰익스피어와 호메로스에 빠져 살았으나 가족 부양을 위해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 다시 입학한다. 졸업 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들어가 25년 재직 끝에 글로벌 반도체업무 사장이 됐다. 나이 쉰넷, 1985년이었다.

창이 대만 정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은 것이 그때다. 변변한 대기업 하나 없었던 대만은 오일쇼크 후 대대적 성장전략을 모색 중이었다. 죽의 장막을 걷어내기 시작한 중국의 행보에선 이미 위협을 감지했다. 대만 정부는 자국에 반도체산업을 일으켜줄 적임자로 미국 전역을 뒤져 그를 고른 것이다. 창은 두말 않고 짐을 쌌다. TSMC 문을 연 건 그로부터 2년 뒤다.

TSMC의 파운드리(위탁생산)는 순전히 창이 창시한 새로운 비즈니스였다. 반도체업을 설계와 생산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도 그전까지 생각지 못했다. 창은 달랐다. 생산라인을 찾지 못해 꿈을 접는 반도체 천재들을 숱하게 봤다. 창의 아이디어를 대만 정부는 전격 수용했다. 실리콘밸리 반도체 두뇌들은 태평양 건너 대만의 이 낯선 공장으로 설계도를 보내기 시작한다. 엔비디아, AT&T, 자일링스, 퀄컴, 미디어텍, 브로드컴 그리고 애플까지 가세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바탕에 성실, 신의가 있다. 지난해 출간된 'TSMC 반도체 제국'에는 이 회사의 DNA와 관련해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TSMC가 생산한 웨이퍼를 절개해 보면 1인치마다 성실성이 새겨 있을 것이다." 성실은 창이 지켜온 경영이념 1번 항목이었다. "나는 성실함이 인격과 관련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준에 미달하는 사람은 결코 곁에 두지 않는다." TSMC의 모토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도 여기서 비롯됐다.

압도적인 투자와 속도로 회사 외형을 키웠다. TSMC와 운명을 같이 한 대만 정부의 지원은 말할 것도 없다. 공장에 필요한 전기, 용수 문제를 해결해 준 이가 지방 관리들이다. 사방이 사탕수수밭으로 둘러싸였던 타이난 일대는 순식간에 반도체 메카가 됐다. TSMC는 지난 3·4분기 결국 삼성의 매출을 제쳐 세계 반도체 1위로 올랐다. TSMC 덕에 대만의 올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년 만에 우리나라를 앞지를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까지 나왔다.

반도체는 이제 기업 간 싸움을 떠나 국가 대항전이 됐다.
우리의 경우 반도체 인재 육성, 공장 인허가 신속처리, 세액공제 등을 담은 반도체 특별법이 지난 8월에야 국회에 제출됐다. 지원 규모를 보면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마저도 처리가 요원하다.
기술은 속도전이라는 걸 우리 정치권만 모르고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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