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여빈·나나 주연의 넷플릭스 시리즈 감독 호평
![[서울=뉴시스] '글리치' 노덕 감독. 2022.10.17. (사진 = 넷플릿스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2/10/18/202210181645342632_l.jpg)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의 '홍지효'(전여빈 분)는 자신에게 무책임하지 않다.
아빠 친구가 소장으로 있는 건축사무소 정규직에 마음만 먹으면 결혼이 가능한 남자친구도 있는데 스스로를 평온한 상태에 놓아두지 않고 스스로를 재차 확인한다.
어릴 때 UFO를 본 후 환각에 시달리는 탓도 있다. 버그가 발생해 전자기기 화면이 지직거리는 '글리치' 현상과 사라진 프로야구팀 '현대 유니콘스' 모자를 쓴 외계인이 그녀의 눈앞에 종종 나타난다. 마치 보이지 않는 듯,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살면 그만이지만 지효는 도저히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
최근 삼청동에서 만난 '글리치'의 노덕(42) 감독은 "지효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털어놨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되는데 자신을 속이지 못하는 거예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관습적인 작품 안에서 재미를 찾아가면 좋을 텐데, 제가 더 재미를 느끼는 솔직한 선택을 하다 보니까 이렇게 계속 어려운 길을 가게 되네요. 하하."
넷플릭스 시리즈 '인간수업'의 진한새 작가가 쓴 '글리치'는 '도른자(돌은 자)의 드라마'로 통한다. 사라진 남자친구를 찾는 걸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초반엔 외계인을 추적하는 SF 장르로 위장한다. 이내 사이비 종교를 좇는 미스터리극으로 변장하고, 마지막엔 지효와 '허보라'(나나 분)의 버디물로 종결된다. 거기에 값대위(태원석 분)·동현(이민구 분)·조필립(박원석 분)의 캐릭터에서 비롯되는 풍자·은유의 코믹 요소도 다분하다. SF의 집중력과 버디물의 활극을 이종교배하며 '미스터리 서클' 같은 독특한 풍경을 그려낸다.
현실적이라서 더 평범하지 않았던 '연애의 온도'(2012), 나비효과의 격랑을 보여준 '특종: 량첸살인기'(2015) 등 평범하지 않았던 화법의 노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왜 그녀가 '글리치'를 선택했는지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노 감독이 OTT 시리즈를 연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이 대본을 쓰지 않은 작품을 감독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2013년께 사실 노 감독도 '글리치'와 비슷한 '톤 앤 매너'의 작품을 구상한 적이 있다. 그런데 결말은 좀 다르다. 서울에 연쇄 실종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를 추적하다가 본인들이 외계인임을 깨닫고 자신의 별로 돌아가는 이야기. 즉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품이었다.
![[서울=뉴시스] '글리치' 노덕 감독. 2022.10.17. (사진 = 넷플릿스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2/10/18/202210181645446176_l.jpg)
본격 SF 장르가 아니더라도, SF 장르를 차용한 작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실험군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소 비현실적인 상황이더라도 SF니까 통용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도리어 그런 상황이 현재 가닿지 못하는 상황을 빌려, 현재를 분명히 인식하게 만든다.
앞서 시네마틱드라마 'SF8'(2020) 중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운세 프로그램을 다룬 '만신'을 연출했던 노 감독 역시 SF에 대해 "가상의 설정을 전제로 하다가 보니까, 현실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매력이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노 감독이 '글리치'에서 무엇보다 초점에 맞춘 건 '버디물'이다. 지효, 보라 두 사람의 우정에 중심을 뒀다. 그런데 관습화된 티격태격 형식의 버디물이 아닌 두 사람의 감정에 치우친 연출에 집중했다. 일각에서 이 시리즈를 퀴어물로 해석하는 이유다. 노 감독도 단순한 우정 이상의 영향을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노 감독이 지효와 보라 관계에서 더 떠올린 정서는 영화 '파이트 클럽'(1999·감독 데이비드 핀처)의 장면들. 소심한 '잭'(에드워드 노턴)과 폭력성이 다분한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이 보여주는 자아분열을 다룬 작품이다. 알고 보니 잭과 더든이 한 사람이었다는 결말을 낸다. 노 감독은 "보라가 사실 지효의 가상의 친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어요"라고 귀띔했다.
![[서울=뉴시스] '글리치'. 2022.10.17. (사진 = 넷플릿스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22/10/18/202210181645555333_l.jpg)
두 여성 주인공이 남성 인물에 크게 기대지 않는 주체적인 캐릭터라는 점과 전여빈·나나의 호연으로 이 작품을 '여성 서사'로 편입하는 이들도 꽤 많다.
노 감독은 "작가님과 작업할 때 좋았던 건 여성성이나 남성성에 대해 따로 화두로 올린 적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각자의 캐릭터로서 존재하고 특정 인물을 여성, 남성으로 나누지 않았어요. 그런 작업 방식이 편했습니다. 남성과 여성 상관 없이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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