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테헤란로의 히잡 시위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19 19:43

수정 2022.10.19 19:43

[노주석 칼럼] 테헤란로의 히잡 시위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작명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1977년 대한민국 서울과 이란 테헤란이 자매도시 결연을 맺고 서울에 테헤란로, 테헤란에 서울로를 각각 개설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이 길의 본래 이름은 삼릉로였으나 이때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가 서울 강남 땅에 깃들었다. 지금은 '강남 중의 강남'이 됐다.

강남의 자연지형은 탄천과 양재천을 따라 동서로 나뉘지만, 강남 개발 당시 강남대로와 테헤란로를 따라 십자형으로 조성됐다. 테헤란로는 '테북'(테헤란로 북쪽 지역)과 '테남'(테헤란로 남쪽 지역)으로 진화했다.
테북은 압구정동·청담동·삼성동·신사동·논현동·학동 등 강남의 터줏대감 격 동네를 이른다. 테남은 역삼동·대치동·개포동·도곡동 같은 신흥 거주공간이다. 같은 강남이지만 주민 구성과 생활환경에서 차이를 보인다.

강남역 1번 출구엔 테헤란로를 알리는 대형 표석이 서 있다. 지난 8일 흥미로운 시위가 이곳에서 열렸다.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사흘 만에 숨진 스물두살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국내에 거주하는 이란인 120여명은 이란 민중가요 '나의 어릴 적 친구'를 부르며 테헤란로를 따라 걸었다. 우리로 치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히잡은 쓰지 않았다.

우리도 1970년대 초 장발이나 미니스커트 단속 같은 어처구니없는 권위주의 시대 폐해를 겪었다. 반세기 전 옛날 일이다. 테헤란의 시계는 고장이 났나? 아홉살 이상의 여성은 히잡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 외국인도 예외는 없다. 어기면 구금을 당하거나 벌금을 내야 한다. '가쉬테 에르셔드'(선도 순찰대)란 무시무시한 종교경찰이 시도 때도 없이 날뛴다.

히잡이 뭐길래 그 난리일까.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집권한 호메이니가 "히잡을 안 쓰는 건 다 벗은 것과 같다"라고 말한 뒤 착용이 법제화됐다고 한다. 이슬람 57개국 중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나라는 이란·사우디아라비아·아프가니스탄 3국뿐이다. 이란 출신 만화가 마르잔 사트라피는 기록만화 '페르세폴리스'에서 "알라가 히잡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여자를 대머리로 태어나게 하셨을 것"이라고 조롱했다.

이란에서 히잡 시위가 시작된 지 한 달이 훌쩍 흘렀다. 이란 여성, 세계 여성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났다. 여성의 목·가슴·팔·다리·머리카락은 남성에게 성적 자극을 주므로 보여선 안된다는 이슬람 교리에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다. 200명 넘는 사망자를 낸 유혈시위의 주축이 20대 젊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테헤란 동북부 서울로 끝에 서울공원이 있다. 이 공원에서 차로 10분 남짓 걸리는 병원에서 아미니가 숨을 거뒀다. 그녀의 비석엔 "당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상징이 될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문명세계를 거스르는 얼토당토않은 히잡 금기는 깨져야 한다. 여성을 사회와 격리하고, 여성 인권을 묵살하는 터무니없는 율법도 폐기돼야 마땅하다.
서울의 번영을 상징하는 빌딩 숲 테헤란로에 서서 이란 테헤란에서 벌어지는 암흑천지를 개탄한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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