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1. 최근 퇴사를 앞둔 삼성전자 반도체부품(DS)부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 소속 A씨는 기술유출을 시도하다 회사에 적발됐다. A씨는 재택근무 중 회사 기밀인 수백건의 보안 자료에 접근했는데, 이를 수상하게 여긴 회사가 A씨를 불러 조사했다. 조사결과 A씨는 스마트폰으로 수백건의 보안 자료를 촬영한 것이 확인됐다.
#2. 지난해 SK하이닉스의 협력사인 반도체 장비업체 B사 고위 관계자들이 중국 경쟁업체에 첨단 기술을 유출해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2018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관련 국가핵심기술, 첨단기술 및 영업비밀 등을 중국 반도체 경쟁업체에 유출한 혐의를 받았다.
이 기술은 반도체 세정 레시피 정보 등으로, 10나노미터(1nm=10억분의 1m)급 D램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 기술이다.
#2. 지난해 SK하이닉스의 협력사인 반도체 장비업체 B사 고위 관계자들이 중국 경쟁업체에 첨단 기술을 유출해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2018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관련 국가핵심기술, 첨단기술 및 영업비밀 등을 중국 반도체 경쟁업체에 유출한 혐의를 받았다.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선두 기업을 표적으로 삼고 있지만, 기술유출이 적발돼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첨단산업 기술유출 관련 처벌 규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첨단기술 유출 범죄 10건 중 3건 무죄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 및 국민경제의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정부가 지정·관리하고 있는 ‘국가핵심기술’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에 대한 기술유출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정보기관과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해외로 유출된 국가핵심기술은 36건, 산업기술은 109건으로 집계됐다. 업종별 해외 유출 건수는 국가핵심기술과 산업기술에서 반도체가 각각 8건(22.2%), 23건(21.1%)으로 가장 많았다. 국가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산업스파이들도 매년 400여명씩 수사기관에 접수되고 있다. 하지만 징역형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2022년 총 506건의 기술유출 사범이 검거됐는데, 이 중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재판에 넘겨진 88건 중 4명(4.5%)에 불과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법원 사법연감을 기반으로 2017~2021년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처리된 제1심 형사공판 사건 81건을 검토한 결과, 집행유예(39.5%)나 아예 무죄(34.6%)를 받는 비율이 70%를 넘었다. 징역형을 사는 경우는 6.2%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막대한 '차이나머니'를 미끼로 기술을 빼오거나 기술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엔지니어들의 영입을 위해 '링크드인'(채용서비스 SNS) 등을 통해 접촉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량 강화 개정안 발의 잇따라
이에 따라 산업기술보호법은 2019년 8월 개정을 통해 벌칙 규정의 법정형을 상향했다.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15억원 이하의 벌금 병과가 신설됐고, 국가 핵심기술 외 산업기술을 해외에 유출할 목적으로 침해한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산업기술의 국내 유출은 기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억 원 이하의 벌금에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됐다.
하지만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법원이 실제 판결을 내릴 때에는 ‘지식재산권범죄 양형기준’의 ‘영업비밀침해행위’를 적용해 판결하고 있다. 해외로 기술 유출을 한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제2유형으로 기본 1년에서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제시하며, 가중 사유를 반영해도 최대 형량이 6년에 그친다. 이는 산업기술보호법상의 해외 유출 처벌 규정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국회도 첨단산업 기술유출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하며 관련 규정 정비에 나서고 있다.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핵심기술 및 산업기술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사용되게 할 목적으로 유출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만 처벌하는 현행 규정을 외국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 유출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경우에 처벌되도록 했다. 산업기술이 외국에서 사용될 것을 알면서 유출하는 경우 징역 20년에 처하고, 20억원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민주당 홍정민 의원도 국가핵심기술과 산업기술의 국외 유출 및 침해행위의 입증요건을 완화하고,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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