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태환 기자 = 항생제 '페니실린'(Penicillin, PCN)은 우연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인류에게 찾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가 세균을 배양하는 페트리 접시를 바로 세척하지 않고, 그대로 놓은 채 여름 휴가를 가면서 페니실린의 단초인 '푸른 곰팡이'를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다.
플레밍 박사의 게으름에서 시작된 이 우연한 발견은 향후 감염자 치료 방식을 바꾸는 의학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접시에 피어난 푸른 곰팡이는 다른 박테리아를 죽이고 살아남았고, 훗날 호주의 하워드 플로리 박사와 독일의 언스트 체인 박사가 의약품 형태의 페니실린을 최종 완성한다.
지난 1928년 미처 세척하지 못한 페트리 접시에서 푸른 곰팡이를 발견한 플레밍 박사는 이 접시의 가장 자리 부분의 포도상구균은 남아있는 반면, 푸른 곰팡이 주변의 균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곧 이 푸른 곰팡이에서 나온 어떤 물질이 식중독 등 감염을 일으키는 포도상구균을 억제하고 죽이는 역할을 했다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에 돌입한다. 이 푸른 곰팡이의 학명은 '페니실리움 크로소지눔'(Penicillium chrusogenum)으로 페니실린이란 이름의 기원이다.
그러나 이 푸른 곰팡이는 바로 항생제가 될 수 없었다. 플레밍 박사는 푸른 곰팡이의 항균 효과를 발견한 다음 해인 1929년 관련 논문을 발표했으나, 다른 과학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다른 실험실에서 같은 항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탓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푸른 곰팡이의 박테리아 억제효과는 선선한 날씨에서 일정 양 이상 배양됐을 때 수일간만 지속됐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이를 알 수 없었고, 연구한 학자 또한 많지 않았다.
사실 당시에는 의료 기술보다 치료 후 박테리아, 세균 감염으로 인해 사망하는 환자가 많았기 때문에 항생제 개발이 필수적이었던 시절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만가지의 박테리아와 세균, 미생물에 대항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페니실린보다 먼저 항생제가 등장해 이러한 국면을 바꾼다. 독일의 의학자인 게르하르트 도마크가 1935년 독일 제약기업 바이엘과 함께 세계 최초의 항생제라고 할 수 있는 '설파닐아미드(설파제)' 계열의 항생제를 화학적으로 합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 설파제는 당시만 해도 무방비였던 감염 치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화학 합성으로 인한 피부발진, 가려움증, 엽산 결핍 초래 등 부작용은 나중에 해결할 문제였다. 더욱이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푸른 곰팡이에 대한 관심은 세상에서 점차 멀어졌다.
변화를 낳은 것은 플로리와 체인이다. 이들은 플레밍의 논문을 접한 1939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항균 연구를 시작했다. 1940년 페니실린 생산을 위한 푸른 곰팡이의 배양 환경과 조건을 과학적으로 확립해냈고, 기존 논문의 1000배 이상 항균 효과를 확인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을 가로막았다. 영국 정부는 전쟁 물자 조달 등의 이유로 연구비 지원을 확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이들은 미국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받아 미국의 제약기업인 화이자와 대량생산을 위한 손을 잡았다.
1943년 화이자를 통해 드디어 대량생산된 페니실린은 유럽 대륙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연합군 병사들에게 공급된다. 페니실린 공급은 현재까지도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를 감소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페니실린은 항생제로 몸 속에서 작용할 시 큰 부작용이 없다는 장점에서 의약품 개발에 큰 의미를 갖는다. 페니실린은 세균의 세포벽을 공격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세포막으로 둘러싸인 동물세포에는 영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모든 항생제는 세균의 잔여 생존과 내성 발현을 유도할 수 있는 문제를 떠안고 있다. 실제 페니실린이 등장하자 곧 이에 반응하지 않는 황색 포도알균이 1950년대에 나타났고 현재 제약회사들은 이후 등장한 슈퍼박테리아들과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이 페니실린의 발견과 실제 의약품 발명으로까지 이어진 플레밍, 플로리, 체인 박사는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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