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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꾀병에 〇을 뜬다고 하니 바로 쾌차했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29 06:00

수정 2022.10.29 05:59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의종금감에 그려진 간경순행도(왼쪽)와 담경순행도
의종금감에 그려진 간경순행도(왼쪽)와 담경순행도

먼 옛날 부잣집 대감에게 두 명의 첩이 있었다. 그 중 어린 첩은 나이도 어렸지만 겁이 많았고 말재간이 없었다. 어린 첩에게는 어미가 있었는데, 그 어미는 마치 시종처럼 딸을 따라다녔다. 어미는 딸이 누군가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거나 해코지를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어느 날 두 첩이 다투는 일이 벌어졌다.
나이가 많은 첩의 비녀가 사라졌는데, “혹시 내 비녀를 자네가 가져갔는가?”하는 질문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첩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몇 마디 하다가 곧 쓰러질 듯 얼굴이 창백해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린 첩의 어미가 거들기 시작했다. 나이가 많은 첩은 사서삼경을 많이 읽었고 주자(朱子)를 들먹이며 논리 있게 말함이 마치 어미에게도 어린아이 대하듯이 훈계하듯 했다. 그러나 어미는 나이 많은 첩의 글귀가 어렵고 말귀를 이해하지 못해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 갑자기 어미는 다짜고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간간이 들리는 단어를 보면 대충 ‘억울하다’, ‘분하다’, 원통하다’는 것이었다. 대충 들어보면 자신의 딸이 어린 나이에 첩으로 들어가서 이런 모욕을 당하는구나 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래도 통하지 않았던지 일어나 펄쩍펄쩍 뛰더니 한순간 간질 발작처럼 팔다리와 손이 뒤틀리다가 이내 기절을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하인들이 깜짝 놀라 어미를 업고 방안으로 옮겨 눕혔지만 저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죽은 듯했다. 이미 첩들의 말다툼은 중요치 않았고, 이제 어미의 생사가 관건이었다. 온 집안에 소문이 나서 대감까지 나서 걱정을 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마을의 의원이 도착했다. 의원이 진찰을 위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있는 어미를 살폈다. 대감과 딸은 이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 어미는 눈은 감고 있었고 손은 몸통 옆에 떨어뜨려 놓은 채였다. 안색은 옅은 청색을 띠었다. 숨소리는 미약하면서도 거칠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몸을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진맥을 해보니 깊은 침맥(沈脈)에 곧 끊어질 듯한 미맥(微脈)이었지만 간간이 현맥(弦脈)처럼 팽팽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의원은 생각하기에 이 상황에서 보법(溫補)을 쓰자니 대노(大怒) 후에 몰린 기가 흩어지지 않았을 우려가 있고, 기혈을 통하게 사법(瀉法)을 쓰자니 맥이 끊어질 듯 허함이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래서 “어찌 손쓸 방도가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방문을 나섰다.

의원을 따라서 대감과 어미의 딸도 밖으로 나왔다.

문밖에서 대감은 의원에게 “이 어미는 그래도 소첩의 한 명 남은 피붙인데, 어떻게든지 살려보시게. 제발 부탁하네.”라고 사정했다.

그때 방안에서 옷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원은 마지못해 다시 진찰에 나섰다. 그런데 아까와 달리 어미는 손을 떨어뜨리지 않고 배 위에 깍지를 낀 채였다.

의원은 ‘방금 전에는 손을 떨어뜨리고 있었는데, 지금 깍지를 끼고 있다면 이것은 귀신이 아니라면 누가 했을꼬~’라고 생각했다.

의원은 다시 진맥을 해보려고 손목을 잡는데 진찰을 거부하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깍지 손의 손가락을 풀려고 당겨보자 힘을 주고 있어서 ‘필경, 이 어미가 나를 시험하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의원은 잠시 숙고를 하더니 ‘맥이 약했던 것은 간교해서 양쪽 겨드랑이에 힘을 잔뜩 주어 두툼한 살로 심장에서 전해지는 혈맥을 차단했으리라. 이는 자신의 병이 위중하다고 여기도록 해서 대감이 자신과 딸을 더욱 불쌍히 여기도록 하고자 하는 속임수일 것이다.’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굴빛이 청색을 띠고 숨소리가 거칠며 거문고 현처럼 느껴지는 맥은 분명 노기(怒氣)가 여전함은 분명해 보인다.’라고 여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미는 정신이 이미 돌아와서 멀쩡했지만 아직 억울함이 풀리지 않아 여전히 기절한 척 한 것이었다.

의원은 갑자기 큰 소리로 “지금 노기(怒氣)로 인해 기절한 상태니 족궐음간경과 족소양담경의 혈자리 군데군데에 뜸 100장을 떠서 살을 태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막힌 기혈이 소통되어 살아날 것입니다. 뜸은 내일 진시(辰時, 오전 7시)에 뜰 것인데, 그때 팔다리를 붙들어 잡을 장정 4명이 필요하오. 그리고 고통으로 소리를 지르고 치아를 악물어 치아가 깨질 수 있으니 입을 틀어막을 솜뭉치도 준비해 주시오. 먼저 그 이전에 이 환약을 물에 개어 먹여 보도록 하시오. 만약 이 환약이 차도가 있다면 뜸은 필요치 않을 것이요.”라고 하면서 가방에서 환약을 하나 꺼내어 주고 방을 나섰다.

의원이 나간 후 딸은 대감이 보는 앞에서 환약을 으깨서 어미의 입에 억지로 집어넣어 삼키게 했다.

다음 날 동이 틀 무렵, 의원과 대감, 어미의 딸, 그리고 장정들이 어미의 방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방에 들어가 보니 누워있는 어미가 부스스 일어나 앉는 것이다. 눈이 충혈된 것을 보니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것 같았지만,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했다.

어미는 모여든 사람들을 보더니 “대감, 이제 저는 모두 쾌차했습니다. 걱정을 끼쳐 송구합니다.” 부리나케 방문을 나서서 총총히 사라졌다.

대감은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선 의원에게 물었다.

“어제 소첩의 어미에게 준 환약은 대체 어떤 것이요. 이렇게 사경을 헤매는 자를 살리는 효과가 있다니 놀랍소.”라고 했다.

의원은 “그 환약은 제가 간혹 소화가 안 될 때 먹으려고 가지고 다시는 소체환(消滯丸)입니다.”
대감은 “그럼 원인이 체기었던 것이요?”라고 다시 물었다.

의원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 않습니다. 어미의 증상과 이 환약과는 무관합니다. 단지, 어미가 겸연쩍어할까 봐서 손을 써 놓은 것뿐입니다. 어미는 처음 말다툼을 할 때 노기로 인해서 경락이 막혀 기절한 것이 사실입니다. 부인들의 칠정(七情)이 울체(鬱滯)되면 손발에 마비증상도 생기기도 하고 혼절에 이르기도 합니다. 마치 중풍처럼 나타나나 한쪽 팔다리만 마비되는 중풍과는 다릅니다. 특히 억울함이나 분노가 치받쳤을 때 더욱더 그런 혼절이 생기고 더구나 주위에 누군가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어미의 증상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서 자연스럽게 풀렸을 것이나 저는 급하게 어미에게 걱정을 안겼습니다. 그 걱정은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살을 때우는 뜨거운 뜸을 뜰 것이라는 예고였죠. 고서에 보면 ‘우(憂, 걱정)는 노(怒, 분노)를 이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미는 밤새도록 뜨거운 뜸을 어떻게 참아낼까 하는 걱정을 했을 것이고, 이 걱정 때문에 노기(怒氣)가 사라진 것입니다.”
대감은 의원의 노고에 감사를 전했다.

“당신은 참으로 명의구려. 의원들은 침구나 놓고 약만 쓰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꾀병까지 치료하다니 놀랍소.”라고 말이다.

나이 많은 첩이 잃어버렸다는 비녀는 그녀의 방안 구석에서 발견이 되었다. 서로 간에 사과가 오고 갔지만 어린 첩의 어미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서 본 집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어미의 꾀병은 결과적으로 딸 아이의 자립심을 키우는데 좋은 약이 된 셈이다.

주위에 보면 의원을 속이는 환자들이 있다. 있지도 않은 병세를 나열하거나 좋아졌지만 여전하다고 하는 것이다. 흔하게 학동들은 서당에 가기 싫어서 배가 아프다고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군역(軍役)을 피하기 위해서 증상을 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꾀병은 모두 마음의 꾀병으로 침이나 약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의원된 자로서 중심을 잡지 않으면 환자의 꾀병에 쉽게 휩쓸릴 수 있기에 항상 경계해야 한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경악전서-사병(詐病, 꾀병)> 〇 一日二妾相競, 燕妾理屈, 其母助惡, 叫跳撒賴, 遂至氣厥若死. (중략) 及著手再診, 則似有相嫌不容之意, 而拽之不能動, 此更可疑也. 因出其不意, 卒猛一扯, 則頓脫有聲, 力强且勁. 由是前疑始釋. 謂其將死之人, 豈猶力有如是乎? (중략) 識見旣定, 因聲言其危, 使聞灸法, 以恐勝之. (중략) 予曰 ‘予之玄秘, 秘在言耳. 但使彼懼, 敢不速活. 經曰 憂可勝怒, 正此謂也.’(어느 날 두 첩이 다투다가 어린 첩의 말문이 막히자 그 어미가 거들며 소리를 지르고 펄펄 뛰다가 마치 죽은 듯이 기절하였다. (중략) 손을 대서 진찰하자 밀어내고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느낌이 있었고 잡아당겨도 움직이지 않아 더욱 의심이 들었다. 불의에 갑자기 힘껏 당기자 소리를 내면서 풀리는데 힘이 강하면서도 빨랐다. 이로 인해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죽으려는 사람이라면 무슨 힘이 이렇게 있겠는가? (중략) 판단이 정해지자 일부러 위태롭다고 말하고 뜸을 떠야 한다는 말을 들리게 해서 두렵게 했다. (중략) 나는 ‘나의 비결은 말에 있었을 뿐이다. 단지 그녀를 겁먹게 했을 뿐 빨리 살리려고 하지 않았다. 내경의 걱정은 노기를 이긴다고 한 말이 바로 이 말이다’라고 했다.
)
〇 夫病非人之所好, 而何以有詐病? 蓋或以爭訟, 或以鬪毆, 或以妻妾相妬, 或以名利相關, 則人情詐僞出乎其間, 使不有以燭之, 則未有不爲其欺者. 其治之之法, 亦惟借其欺而反欺之, 則眞情自露而假病自瘳矣. 此亦醫家所必不可少者.(사람들은 병을 싫어하는데 왜 꾀병이 있을까. 소송으로 분쟁하거나 서로 치고받고 싸우거나, 혹은 처와 첩이 서로 투기하거나 명분이 이익에 서로 관계되면 사람들의 인정은 양심을 속이고 거짓을 꾸미니 잘 밝히지 않으면 속게 된다. 치료하는 법 역시 오직 속임을 빌려 다시 속이면 진정이 스스로 노출되면서 거짓병은 저절로 낫는다.
이 역시 의사들도 소홀히 할 수 없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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