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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불어난 가계, 소비마저 줄일땐 경기침체 피하기 힘들것" [한미재무학회 지상좌담]

김현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0.30 18:20

수정 2022.10.30 18:20

글로벌 복합위기 확산... 한국 위협하는 가장 큰 리스크는
지난 10년 좀비 기업·가계 급증
급격한 금리인상 시작되며 위기
이로 인한 불경기 온다는게 중론
피해 최소화할 정책 서둘러야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 줄이고 취약계층 위한 지원책 확대해야
기업 만기연장·상환유예보다는 재무구조조정·인수합병 유도를
"빚 불어난 가계, 소비마저 줄일땐 경기침체 피하기 힘들것" [한미재무학회 지상좌담]
전 세계 경제가 고금리, 고인플레이션, 고환율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도 높은 미국의 통화긴축정책은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가에 악재가 되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해 3000 선을 돌파한 기쁨도 잠시 2200 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동안 오르기만 했던 국내 부동산 가격은 하강 국면을 맞았다. 여기에 더해 강원도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까지 더해 우리나라 시장은 '돈맥경화' 현상으로 불릴 만큼 유동성 위기감이 극에 달했다. 가계부채, 부동산 버블, 자본조달 시장에 대한 정부 정책, 업계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재원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 노준기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교수, 배기홍 요크대 교수에게 현 한국과 미국 경제상황에 대한 진단 및 개선 방향을 물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큰 악재는 어떤 것으로 보나.

▲최재원 교수=금융안정성에 대한 위험이다. 지난 10여년간 유례없는 저금리로 리스크 관리가 많이 이뤄졌고 레버리지 또한 늘었다. 문제는 그게 어디서 곪아 터지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 국채 폭락 사건에서는 연금펀드들이 이자율 파생상품 포지션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었고, 마진콜을 받아 금융안정이 깨졌다. 연금펀드들이 마진콜을 받은 것 자체가 충격이다. 대형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가 유동성 위기에 빠질 위험 또한 커졌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고 앞으로 어디서 이런 테일리스크 이벤트들이 일어날지 모른다.

▲노준기 교수= 현재의 위기와 경기침제 우려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로 인한 에너지와 원자재 수급문제, 공급망 교란, 미·중 대립으로 인한 공급망 재편 등이 그것이다. 이들이 맞물려 초래된 복합적 위기로 어느 하나를 꼽아서 가장 큰 악재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러한 요인들에 더해 지난 3년간 각국의 코로나 대응으로 인한 과도한 재정지출에 의한 재정부실과 정치적 불안요소들로 인해 어려운 경제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배기홍 교수=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악재로 본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신흥국 위기, 언제까지 갈 것으로 보나.

▲최 교수=놀랍게도 금융안정성의 위험이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먼저 일어나고 있다. 이에 반해 신흥국에서는 아직 터진 위기 상황은 없다. 1990년대 말 신흥국의 원죄는 훨씬 감소했다. 많은 신흥국이 외환보유액을 높였으며 외채 의존도를 줄였다. 아직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만약 문제가 터진다면 높은 이자와 환율을 감당할 수 없는 기업들의 부도로 시작된다고 본다. 이는 신흥국들의 장기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배 교수=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는 한 미국 정부의 고금리 정책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의 핵심 인플레이션은 1982년 이후 최고를 기록하고 있어 적어도 내년 말까지 신흥국 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악재 해소시점은.

▲최 교수=보통 물가는 경직적이고 상향속도가 더 빠르다. 즉 물가는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전쟁 또한 장기화될 것이라는 예상들이 있고 기나긴 겨울이 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의 대부분 예상치는 2024년은 돼야 인플레이션이 3%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예상치는 미국 연준이 높은 이자율로 물가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치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연준이 섣불리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을 하면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치가 증가할 수 있고 이는 경제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노 교수=미국의 물가가 정점을 찍었다는 것이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확인이 됐다. 그에 따라 기대인플레이션이 상당한 레벨까지 줄어든 후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 추세가 언제 중단이 될지가 관건이다. 최소한 2023년 후반기 혹은 2024년 상반기까지 이러한 혼동성과 위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뎁디플레션(부채가 소비를 억누르는 경기침체)의 시작이라는 시선도 있다. 가능성은.

▲최 교수=충분히 가능하고 아마 부채에 대한 부담으로 경기불황이 올 것이라 본다. 10여년 동안의 저금리로 수많은 좀비 '기업·가계'들이 생겨났다. 이제 이자율이 높아지면 이런 한계기업들은 부도 위험이 증가하고, 가계들 또한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요소다.

▲배 교수=한국의 경우 주요 20개국(G20) 국가와 비교해볼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130% 정도)가 정부부채(40% 정도)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다. 따라서 고금리로 인한 가계의 수요감소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IRA 등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최 교수=다행히 한국 반도체 기업은 1년간 반도체장비 중국 수출 통제 유예를 받았다. 빠른 변화가 없으면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의 정치경제적 위험 또한 증가하고 있다. 중국 수출에 의존하던 수출루트를 다변화하는 등 포트폴리오를 분산시켜야 한다. 슈퍼파워 간의 갈등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노 교수=우리 지난 역사에서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러한 어려움들은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파생되는 역사적 변동기의 것들이다. 정치적인 진영에 관계없이 국익에 최우선을 둔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여러 경제주체들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해 보인다.

▲배 교수=북한이 과거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등거리 외교를 했던 것과 같이 우리도 미·중 사이에 거리를 두고 실리를 챙기는 외교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현 정부는 지나치게 편향된 미국 중심의 외교정책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3년 한국과 미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와 기회는.

▲최 교수=2023년은 한동안 고금리가 유지될 것이다. 이는 그동안 저금리에 의존했던 신용시장의 버블이 깨지게 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불경기는 거의 확실히 온다고 본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용시장 버블에 의한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는 그 후폭풍이 훨씬 더 심하다. 한국의 경우 가장 큰 리스크는 높은 가계부채로 인한 영세 자영업자들과 가계들의 이자 부담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폐업 리스크가 증가할 것이고, 가계는 소비를 줄이게 될 것이다.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지나친 환율방어로 인한 외환보유액 소진은 더 큰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자율을 적정 수준으로 올리고, 외환시장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미국 경제의 가계부채 문제는 한국보다 심하지 않다. 금융기관 안정성 리스크도 낮다. 하지만 높은 물가로 인한 경기침체 리스크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

▲노 교수=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더라도 그로 인한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가 관건이 될 듯하다. 미국에 의해서 주도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기회로 삼는 동시에 최대 수입국인 중국에서의 마켓셰어(시장점유율)를 얼마나 방어해 낼 수 있는지, 향후 재편이 된 시장에서 얼마나 유리한 상황을 점할 수 있는지가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

▲배 교수=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중국과의 무역갈등으로 보인다.

―주식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이유는.

▲노 교수=주식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현재의 주된 요인은 △튼튼하지 않은 내수시장 △인구감소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 △식어가는 산업성장 엔진 △정치적 불확실성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들 수 있다.

▲배 교수=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배구조가 개선됐다고는 하나 국제기준에 볼 때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특히 주주행동주의 투자시장(Activist Market)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는 지배구조 문제로 인해 주주가 피해를 입어도 책임을 전문경영자와 소유경영자에게 물을 수 있는 법적 제도가 미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투자자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수단이 없으니 주주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의 출현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주주행동주의 투자시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기업 연착륙 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나. 대안은.

▲최 교수=높은 환율과 이자율로 부도 리스크가 증가하는 기업들이 생길 수 있다. 신용경색에 의한 금융위기와 불경기는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불경기가 깊고 길어질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 한계기업들의 신용만기 연장, 상환유예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런 정부 개입이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정부부채를 증가시키고 이는 언젠가 세금으로 메꾸어야 한다.
신용 리스크가 큰 기업들의 재무구조 조정이나 바이아웃 펀드들의 인수합병을 유도해 시장이 해결하도록 장려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리=khj91@fnnews.com 김현정 김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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