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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〇〇〇은 아침에 발생하면 저녁에 죽고, 저녁에 발병하면 아침에 죽는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1.05 06:00

수정 2022.11.05 10:33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동의보감에 그려진 신형장부도(왼쪽)과 심장도(중간) 그리고 비장도
동의보감에 그려진 신형장부도(왼쪽)과 심장도(중간) 그리고 비장도

먼 옛날, 한 남자가 중년의 사내를 업고 의원을 부리나케 찾았다. 환자를 업고 온 남자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으며 기진맥진했다. 한참의 거리를 업고 온 듯했다.

의원은 다급히 물었다. “어찌 된 것이요?”
환자를 업고 온 남자는 “지금 제가 업고 온 이는 제 형님으로 함께 나무를 하고 있는데, 형님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지면서 ‘억’라고 쓰러져서 이렇게 업고 왔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되었소?”하고 의원이 물었다.

남자는 “약방 바로 뒷산에서 나무를 하다 업고 왔으니 한 일식경(一食頃) 정도 된 듯하오.”라고 했다.

일식경은 밥 한끼를 먹는데 걸리는 시간으로 보통 30분 정도를 의미한다. 의원은 진맥을 해 보고서는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면서 체념한 듯 “어찌 손을 쓸 방도가 없소이다.”라고 했다.

형을 업고 온 남자는 “아니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데, 무슨 말씀이시오? 급하게 침이라도 한 대 놔야 하는 것 아니오.”하며 언성을 높였다.

의원은 “지금 침이 문제가 아니요. 이 사내는 지금 심병(心病)으로 인해 쓰러진 것으로 벌써 이렇게 팔다리 오금부위 아래까지 청색이 나타나면서 싸늘한 것을 보면 이제 곧 명을 다 할 것이요. 의서에 보면 이러한 심통을 진심통(眞心痛)이라 했는데, 아침에 발작하면 저녁에 죽고, 저녁에 발작하면 다음 날 아침에 죽는다고 했소. 그럼 나절 만에 죽는다는 말인데 사실 나절도 긴 시간이고 발병하면 곧 죽는다는 의미일 뿐으로 진심통은 죽을 뿐 고칠 방법이 없소이다.”
그러면서 “내 행침(行針)을 하지 않는 이유는 침을 맞고서도 죽을 것이 뻔한데, 설령 침을 맞고 나서 죽으면 괜히 조잡한 침술 때문에 죽었다는 꼬투리가 잡힐 것이 아니겠소. 어서 관이나 준비하시구려.”
의원은 명을 재촉하는 환자의 치료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미안했지만 자신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진심통은 요즘 병명으로 급성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마비를 말한다.

아니나 다를까 의원이 말이 끝날 무렵 환자는 명을 다해 숨을 거두었다. 형을 업고 온 사내는 통곡을 하면서 다시 형을 업어 집으로 갔다.

의원에게는 한 제자가 있었다. 스승의 진료를 말없이 지켜보던 제가가 물었다.

“스승님, 허임은 진심통에 단중혈(丹中穴, 전중혈)에서 사방으로 각각 1치가량 떨어진 곳에 침을 놓은 후 부항을 붙인다고 했습니다. 분명 해당 침법으로 살렸던 진심통 환자가 있어서가 아니겠습니까?”하며 따지듯이 물었다.

허임(許任)은 조선 중기의 최고의 침의(鍼醫)로 명의 중 한 명이었다.

의원은 차분하게 “허임이 기록한 진심통의 침법은 나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심장은 군주지관(君主之官)으로 원래 병들지 않는다. 그래서 심장의 혈맥(血脈)이 막히면 치료방법이 없는 것이다. 허임이 침법으로 심통환자를 살렸다지만 이는 본경의 혈맥이 완전하게 막힌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너도 맥동(脈動)을 느껴봐서 알겠지만 혈맥이 온전하면 옥구슬이 쟁반을 구르듯 맥의 흐름이 부드럽고, 혈맥이 약간이라도 막히면 맥의 흐름이 껄끄럽고 막혀서 마치 빗방울이 모래에 떨어지는 듯 혹은 칼로 대나무를 긁는 것 같으며, 혈액이 완전하게 막히면 맥동이 느껴지지 않아 마치 혈맥이 지나지 않는 살집만을 누르는 느낌인 것이다. 따라서 심통이 생겼을지라도 혈맥이 완전하게 막히지 않았다면 죽음만은 면할 수 있지만 때때로 발작하면서 오래도록 낫지 않고 결국 언젠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는 완전한 진심통이 생길 것이다.”
의원이 제자에게 심통의 종류를 설명하고 있는 와중에 한 남자가 약방문을 급하게 두들겼다. 문을 열어보자 남자는 급체(急滯)를 했다고 하면서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부위를 툭!툭!툭! 치고 있었다.

의원은 환자를 진맥을 해 보더니 급하게 “통증이 어떻게 나타나는 것이요?”라고 물었다.

남자는 “점심을 급하게 먹고 나서 일을 하러 나갔는데, 갑자기 마치 흉곽이 수레에 깔린 듯 답답해졌습니다. 뒷목도 뻐근하고 턱과 왼팔 겨드랑이도 아프오. 중완에 침 한방만 놔 주시오.”라고 말했다.

의원은 복진을 해 보고 환자의 손발을 만져 보더니 “당신은 체한 것이 아니라 심통이오. 만약 체기가 있었다면 손발이 서늘했을 것이외다. 지금 위병이 아니라 심병이기에 중완에 침을 놓아서는 효과가 없소. 이는 궐심통(厥心痛)으로 치료를 급히 하지 않으면 진심통으로 바뀌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이요.”
의원은 급하게 단삼, 삼칠근, 용뇌 그리고 침향을 가루내어 환자에게 먹였다.

“이 가루를 입안에 넣고 삼키지 말고 침으로 녹여드시오. 원래 혀는 심장의 관문으로 혀로 약을 녹이면 심장의 경락으로 가장 빠르게 도달하게 될 것이요”
그리고 등에 있는 심수혈(心兪穴)에 침과 뜸을 놓았다.

그랬더니 환자는 “휴~ 이제야 좀 살 것 같습니다.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들면서 편해졌습니다.”라고 했다.

환자는 요즘 병명으로 협심증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환자가 심통이 나아졌다고 좋아하는 순간 또 다른 환자가 찾아왔다. 환자는 자신이 심통이 생겨 곧 죽게 생겼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런데 진찰을 해 보니 이 환자는 위장병에 의한 급성 위통이었다. 의원이 사관(四關)에 침을 놓고 엄지손가락에 있는 소상혈(少商穴)과 엄지발가락에 있는 은백혈(隱白穴)에 사혈을 했더니 그 자리에서 통증이 사라졌다.

제자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스승님, 이 환자는 자신이 심통이 있다고 하는데, 어찌 이리 태연하게 자침을 행하신 것입니까?”
의원은 “이 환자는 심장통이 아니었다. 보통 위장의 윗 입구를 분문(賁門)이라 일컫는데, 세속 의원들은 분문이 심장과 연결되어 있어서 위완통(胃脘痛)까지 심통이라고 해서 위완심통(胃脘心痛)이란 표현까지 하는 바람에 심장통으로 오인한 것 뿐으로 이는 심장과는 무관한 것이다. 요즘 세간에서 이를 심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심한 위통이나 식도의 통증 또한 심장의 통증처럼 나타나기 때문에 삼가 살펴야 한다. 그래서 의서에 보면 진심통 이외에도 심장에 나타나는 통증을 9종류로 구분해 놓은 것으로 이 모든 종류를 서로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내가 이렇게 태연자약하게 진찰을 하고 있지만, 사실 머릿속은 태풍이 몰아치듯이 불안과 걱정이 많구나. 나는 심통과 관련된 증상을 오진하여 많은 환자들을 죽었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새벽에 약방문을 급하게 두드리면서 체했다고 왔던 환자의 3할은 바로 진심통(심근경색)이나 궐심통(협심증)이 원인인 심통이었던 것 같다. 의술이 미천하여 병을 보는 눈을 뜨지 못했을 때는 단지 환자의 말만 듣고 위장병에 쓰는 소체환(消滯丸) 등만을 주었는데, 진심통이었던 환자들은 환약을 먹기도 전에 아니면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비명횡사를 했다. 이제 병을 보는 의안(醫眼)을 얻었지만, 이는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얻게 된 것이니 부끄럽고 괴롭구나. 세속에 보면 자신이 명의라고 떠드는 의원들이 있지만, 명의는 결국 환자들이 만들어 주는 것일 뿐이기에 겸손해야 할 것이다.”
제자는 “스승님께서는 진심통(眞心痛)은 치료방법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예방하는 방법은 있을 것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의원은 “우선 과도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또한 너무 분노하거나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여색과 기름진 음식을 멀리하고 정기를 보존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혈(瘀血)을 없애는 것이다. 어혈이란 혈액을 탁하게 하고 동시에 혈관이 막히게 한다. 어혈을 없애고 순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지 팔다리와 몸을 자주 움직여 주는 것이 좋다. 다만, 농사일로 너무 과로하는 것은 심장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좋지 않다. 고서에 보면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의 지도리는 좀 먹지 않는 것은 바로 항상 움직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도 바로 기혈순환의 중요성을 의미한 것이다.”라고 했다.

제자는 다양한 종류의 심통이 있다는 것을 문헌으로는 봤지만 하루만에 3종류의 심통 환자를 경험한 것에 당황스러웠다. 심통에 있어 자칫 판단을 잘못하면 의원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기에 두려움도 있었다. 불현듯 스승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인 ‘명의는 환자가 만든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오진(誤診)과 같은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제자는 오늘에서야 과거 선인들이 왜 심장을 군주지관(君主之官)이라고 해서 ‘왕과 같은 장부’라고 이름 지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광제비급> 眞心痛, 朝發夕死, 夕發朝死, 心爲莊府之主, 故神去氣竭, 手足靑至節, 死, 無治法, 許任方云, 丹中穴, 四方各去一寸, 針後, 付缸云.(진심통은 아침에 발생하면 저녁에 죽고 저녁에 발생하면 아침에 죽는다. 심장이 오장과 육부의 주관자이므로 신이 없어지고 기가 고갈하여 손과 발 끝에서 관절까지 퍼렇게 되면 죽게 되며 치료법이 없다. 허임방에는 단중혈에서 사방한 치 떨어진 곳에 침을 놓고 그 자리에 부항을 붙이라고 하였다.)
<단곡경험방> 眞心痛卽死不治. 其久心痛者, 是心之與別絡爲風邪冷炅所乘痛, 故成殄不死, 發作有時, 經久不得差也. 胃之上口名曰賁門, 賁門與心相連, 故經所謂胃脘當止而痛. 今俗呼謂心痛者, 誤也. 夫九種心痛, 詳其所由, 皆在胃脘, 而實不在心也.(진심통은 곧 죽으므로 치료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심통을 앓는 것은 심에서 갈라져 나온 낙맥이 풍사와 냉열의 침습을 받아서 아픈 것으로 병이 들었으나 죽지는 않고, 때때로 발작하면서 오래도록 낫지 않는다. 위의 상구를 분문이라 일컫고 분문은 심과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내경에서는 ‘위완은 심에 해당되는 부위가 아프다.’고 하였다. 요즘 세간에서 심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무릇 9가지 심통이 있는데, 그 원인을 자세히 보면 모두 위완에 병이 있는 것이지 실제로 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의종손익> 俗稱心痛, 非眞心痛, 乃胃脘當心痛, 或脾連心痛, 或腸虛陰厥, 亦令心下痛. 久者心之別絡, 爲風冷熱所乘痛, 故成疹不死. 眞心痛者, 大寒或汚血衝心, 手足靑至節, 痛甚, 死不治.(민간에서 심통으로 일컫는 병은 진심통이 아니라, 위가 아픈 것을 심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거나 비장이 심장과 연결되어 아픈 것이다. 혹은 양허로 음궐이 되어도 명치 아래가 아프다. 오래된 심통은 심에서 갈라진 낙맥이 풍사나 냉열의 침입을 받아 아픈 것이다. 그러므로 병을 앓아도 죽지는 않는다. 진심통이란 병은 심한 한기나 더러운 피가 심장을 침범하여 손발에서 관절까지 퍼렇게 되는 증상으로, 통증이 심하며 죽어도 치료할 수 없다.)
<동의보감> 嵇康曰, 養性有五難, 名利不去爲一難, 喜怒不除爲二難, 聲色不去爲三難, 滋味不絶爲四難, 神虛精散爲五難. 五者無於胸中, 則信順日躋, 道德日全, 不祈善而有福, 不求壽而自延, 此養生之大旨也. (중략) 孫眞人曰, 雖常服餌, 而不知養性之術, 亦難以長生也. 養性之道, 常欲少勞, 但莫大疲及强所不能堪耳. 夫流水不腐, 戶樞不蠹, 以其運動故也. 養性之道, 莫久行, 久立, 久坐, 久臥, 久視, 久聽, 皆令損壽也. (혜강이 말하기를 양성에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명리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첫째 어려움이고, 희노를 없애지 못하는 것이 둘째 어려움이며, 소리와 여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셋째 어려움이고, 기름진 음식을 끊지 못하는 것이 넷째 어려움이며, 신이 허하고 정이 흩어지는 것이 다섯째 어려움이다. 이 다섯 가지가 가슴속에 없으면 믿고 따르는 마음이 날로 두터워지고 도와 덕이 날로 온전해져서 선을 구하지 않아도 복이 오고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아도 절로 장수하게 된다. 이것이 양생의 큰 요지라고 하였다. 손진인이 말하기를 비록 좋은 음식을 늘 먹더라도 양성술을 알지 못하면 장수하기 어렵다. 양성하는 방법은 늘 힘을 적게 쓰고 너무 피로하게 만들거나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고 문의 지도리가 좀먹지 않는 것은 늘 움직이기 때문이다. 양성하는 방법은 오래 걷거나 오래 서 있거나 오래 앉아 있거나 오래 누워 있거나 오래 보거나 오래 듣지 않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지 않으면 모두 수명을 단축한다고 하였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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