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고통에 비교는 없다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1.15 18:05

수정 2022.11.15 18:05

[기자수첩] 고통에 비교는 없다
이태원 참사 현장 한복판에 있었다.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의 절규, 기묘한 상황. 남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지난달 29일 기억이었다.

'프로'라고 다짐했다. 일이 우선이었다. 취재를 정리하곤 용산에 위치한 집으로 달려갔다.
문장이 쓰여지지 않았다. 맥주 4캔을 연달아 마셨다. 새벽 4시까지 기사를 썼다. 무얼 썼는지도 모른다. 마감하고 소금을 뿌렸다. 영혼을 달래려 해봤지만, 꿈에서 그들은 다시 나타났다.

1주일은 술 없이 잠들지 못했다. 휴대폰 사진첩을 열 수 없었다. 이태원 파출소에서 헌신했던 경찰관과 인터뷰하는 날, 심리상담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용산구는 이태원 인근 카페를 대관해 트라우마 상담을 하고 있다.

"고통에 비교는 없어요." 지난 14일 카페 '레잇먼트'에서 심리상담사의 말이다. 현장에서 고작 사진 찍고 이야기나 엿들은 내가 여타 사고 대응인력에 비해 고통받을 일이 있겠느냐고 하니 돌아오는 대답이다. 나는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시민들 앞에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을 때 술이라도 마셨지만 경찰, 소방관들은 그러지 못했다. 심리상담사는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 아닌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힘들다'라는 말을 편할 때 취사선택하는 나의 알량한 마음에도 "치료 과정"이라고 토닥였다.

이태원은 이제 사람들이 오간다. 오가는 사람들은 책임을 외친다. 경찰, 소방, 행정안전부의 문제라며 서로에게 화살을 겨눈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피의자를 소환하고 정치권은 책임자의 사퇴를 외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책임보다는 참사를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 아닐까.

용산구청 관계자는 "심리상담센터를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건의 한복판에서 고통받고 있지만 특수본 조사와 기자들의 질문에 견디고 서 있다. 심리상담사는 참사 이후 초반 2주의 심리 변화를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불안, 초조가 심해지면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며 말이다. 이날 심리센터 칸막이 옆에는 한 시민이 상담사의 안내에 따라 5초간 크게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마지막 큰 산 하나 넘자' 카페 방명록에 걸려 있는 문구다. 이달 25일까지다.
구청 관계자가, 마음을 다친 시민이 하루빨리 찾아가길 바란다.

beruf@fnnews.com 이진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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