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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사설] 평지풍파 일으킨 경호처장의 군·경찰 지휘권 거둬들여야

노주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1.18 14:26

수정 2022.11.18 14:26

[파이낸셜뉴스] 대통령 경호처가 입법예고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 내년 예산안 심의 정국에 때아닌 평지풍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호처는 개정령에서 '처장은 경호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경호구역에서 경호활동을 수행하는 군·경찰 등 관계기관의 공무원 등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라는 조항을 새로 넣었다. 이 시행령에 따르면 경호처장은 군과 경찰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지원받은 경호인력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권을 갖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경호처가 군과 경찰을 장악하려는 반헌법적 기도를 하고 있다면서 철회를 촉구했다. 17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예결소위)는 여야 간 설전 끝에 파행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시행령이 그대로 시행되면 군·경찰·경호처 협력체제로 운영되던 대통령 경호가 경호처의 권한 독점체제로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일자 경호처는 해명자료를 통해 "대통령 경호에 투입된 군·경 등 관계기관의 경호 인력에 대해 새로이 지휘권을 갖게 된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기존에도 (중략) 군·경 등 관계기관의 경호활동을 지휘·감독해왔다"라고 해명했다. "내부지침 등의 형식으로 규정돼 있던 내용을 시행령으로 명확히 한 것일 뿐 기관의 권한을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시행령 개정에 반대하지 않으며 경호처의 경호 현장 지휘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구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서 국군조직법을 위배할 소지가 있는 부분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향후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경호처와 협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놓고 반대하진 않지만 입법예고된 내용의 시행령 개정은 곤란하다는 취지로 읽힌다.

우리는 경호처의 군 지휘·감독권은 군 지휘권을 규정한 국군조직법 취지에서 벗어난다고 본다. 헌법과 국군조직법은 대통령이 국군을 통수하고,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사 사항을 관장하게 돼 있다. 또 군의 작전지휘권은 합참의장에게 두었다. 경호처에 위임한 파견 군인의 지휘권을 경호처장이 행사하겠다고 하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또 구체적인 근거 법률 조항인 대통령경호법 제3조와 제5조 3항에서 경호처장이 경호처의 업무를 총괄한다고 돼 있으나 지휘·감독한다는 문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직무상 필요할 경우 다른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장에게 공무원 또는 직원의 파견이나 그 밖에 필요한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경호처의 개정 시행령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지적을 받을만하다. 대통령경호법은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도록 한정하고 있는데 이번 시행령에서 군경까지 지휘·감독하도록 범위를 넓힌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옛말이 있다. 유신 시절 차지철 경호실장이 휘두른 무소불위의 월권행위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는 1974년 11월 '대통령경호실법 시행령'을 개정, 경호실에 차장과 행정차장보, 작전차장보를 두도록 직제를 개편했다. 이어 1976년 2월 작전차장보가 다른 기관으로부터 파견된 작전부대에 대한 지휘·감독을 할 수 있게 다시 개정했다.

1978년 12월엔 대통령령인 '수도경비사령부 설치령'을 개정, 수경사가 대통령 경호가 필요한 지역에서 작전활동을 할 때 대통령 경호실장의 통제를 받도록 고쳤다. 경호실장이 사실상 수경사의 작전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경호실의 군 지휘·감독 권한은 12·12 군사반란 직후인 1979년 12월 27일에 시행령에서 삭제됐다.
또 경호실장의 통제를 규정한 수경사 설치령은 1980년 5월에 '대통령 경호실장과 협의한다'로 개정됐다. 역사적 흐름을 보면 경호처장의 군·경찰 지휘 및 감독 권한은 사라져야 할 구시대 유물임을 알 수 있다.
경호처는 시행령 개정으로 더 이상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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