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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사느냐 죽느냐 그것만 문제인가

[기자수첩] 사느냐 죽느냐 그것만 문제인가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함민복의 시 '긍정적인 밥'의 한 구절이다. 밥을 먹지 않으면 예술은커녕 삶의 지속도 어렵다. 도스토옙스키는 도박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썼고, 베토벤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곡을 썼다. 인간 예술가는 예술활동을 하기 위해 밥이라는 연료가 필요하다.

'예술→밥→또 다른 예술'은 순환한다. 예술이 밥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에 값을 매겨야 한다. 예술의 값은 예술성과 비례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예술→밥'의 순환을 지속하다 보면 어떤 예술가들은 천재성에 의해서, 혹은 운이 좋아서 높은 가격표가 붙고 큰 성공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앤디 워홀의 똥 묻은 팬티는 그가 무명일 땐 쓰레기였을지 모르지만 그가 유명해지고 나서는 아주 비싼 값에 팔린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사치재'다. 사람은 빵과 물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시와 음악이 없어도 죽지는 않는다. 인공지능(AI)이 창작한 그림이 미술상을 받고,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파일에 대체불가토큰(NFT) 딱지를 붙이면 30억원도 받는 시대다. '배고픔과 결핍이 예술성의 원동력'이라거나 '자본에 귀속된 예술'을 비판하는 것은 이제는 촌스럽다. 그렇다면 '예술과 돈' 그다음의 질문은 무엇일까?

세계적인 뉴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국왕립예술원 석학회원인 이진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현대 예술의 특징으로 △협업과 상호작용 △열려 있는 자세와 탈중앙화 △모호함을 꼽았다. 예술과 기술이 결합하는 시대에 수용자의 감상에 방점을 둔 '수용자의 미학'도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현대 물리학에서도 관측 이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특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예술에 있어, 햄릿의 그 유명한 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시대는 완전히 저문 것 같다.
사실, '사느냐 죽느냐'의 원문은 'to be or not to be'이다. 셰익스피어는 '사는 것(생존)'이 문제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 자체에 질문을 던진 것일지 모른다. 앞으로의 예술도 다시 "예술가(인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hwlee@fnnews.com 이환주 문화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