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中 기업, 지정학적 리스크 피해 싱가포르 '국적 세탁'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1.30 15:24

수정 2022.11.30 15:24

올해 싱가포르에 신규 등록한 中 기업 500곳 넘어
지정학적 갈등 피하고 해외 확장위해 싱가포르로 국적 세탁
과거 홍콩으로 향하던 중국 기업들, 싱가포르로 선회
지난달 6일 싱가포르의 금융 중심지인 래플스 플레이스 지역에서 회사원들이 점심 시간에 건물을 나서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달 6일 싱가포르의 금융 중심지인 래플스 플레이스 지역에서 회사원들이 점심 시간에 건물을 나서고 있다.AF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중국 기업들이 최근 대만과 기술 유출 등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갈수록 험악해지자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기고 있다. 이는 국적을 바꿔 반(反)중 감정과 제재를 피하려는 조치로 중국 기업들은 예전과 달리 중국에 예속된 홍콩보다 싱가포르를 더 선호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싱가포르 업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기업 소재지를 싱가포르로 옮기는 중국 기업들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FT는 공식 집계는 없지만 현지 법무법인 관계자를 인용해 올해 들어 최소 500개의 중국 기업들이 싱가포르 국적으로 등록했다고 밝혔다.
또다른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새로 등록한 중국 기업이 ‘패밀리 오피스’를 포함해 약 400개라고 추정했다. 패밀리 오피스는 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자산운용사로 상당수 기업들이 중국계다. 관계자는 2020년 말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패밀리 오피스 숫자가 400개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1000개를 넘긴다고 예상했다.

싱가포르 법무법인인 베이프론트로의 라이언 린 국장은 중국 기업들이 방대한 내수시장 외에도 해외 확장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 역시 중국 국적을 고수하면 진출하기에 민감한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싱가포르는 강력한 제도적 기반과 국제적인 명성이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싱크탱크가 발표하는 전 세계 금융센터 경쟁력지수(GFCI)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지난 9월에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 이어 3위에 올라 홍콩을 제쳤다.

FT는 중국 기업들이 국적을 바꾸는 이유에 대해 우선 중국에서 사업할 경우 엄격한 코로나19 통제로 인적교류가 막혀 새로운 사업 및 합병 등의 기회를 만들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중국 기업들은 최근 미국 및 서방 국가들에게 안보 불안 요소로 지목당해 제재 명단에 올랐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5월에 미 증시에 상장한 80개가 넘는 중국 기업들이 회계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며 잠재적인 퇴출 명단에 올렸다. 또한 평상시에 반중감정이 강했던 인도는 지난 2월에 54개 중국 어플리케이션(앱)을 민감 정보 수집 혐의로 인도 시장에서 퇴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인도는 이미 2020년에 267개의 중국 앱을 금지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 패션 업체인 셰인의 경우 이미 지난해부터 싱가포르 지사를 공격적으로 확대했으며 지사 운영 역시 싱가포르 기업에 맡겼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가 미 증시 상장을 노린 것이라고 풀이했다. 중국 전기차 기업인 니오는 미국과 홍콩 증시에 상장한 상태지만 유럽 증시 진출을 위해 지난 5월에 먼저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했다.

익명의 사모펀드 중역은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싱가포르 세탁’이라고 부른다”며 “기업이 본사 소재지를 싱가포르에 두거나 상장한 경우 투자 유치에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법무법인 덴턴 로디크의 키아 멍 로 수석 파트너 변호사는 중국 기업들이 과거에는 이러한 목적으로 본사를 옮길 경우 주로 홍콩으로 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 정부가 최근 홍콩에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싱가포르가 다음 정착지로 인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기업들이 싱가포르 업체와 합작사를 만들거나 인수합병 및 현지 직원 고용을 추진 중이라며 이사회에 싱가포르 임원을 고용하는 것도 선택지에 있다고 설명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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