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2.12 18:09

수정 2022.12.12 18:09

[강남시선]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022 카타르 월드컵이 종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10일과 11일 8강전 네 경기가 치러져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 프랑스, 모로코가 4강에 안책했습니다. '세계 최강' 브라질이 크로아티아에 덜미를 잡혔고, '아프리카의 붉은 사자' 모로코가 포르투갈을 꺾었습니다. 아프리카 팀이 4강에 오른 것은 월드컵 92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번 월드컵은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유행어를 낳았습니다. 단 세 음절로 이뤄진 이 말은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선 '올해의 명언'으로까지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글로벌 온라인 게임 대회 '2022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일명 롤드컵)에서 우승한 한국 DRX팀 주장 김혁규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데프트'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그는 지난 10년간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지만 투혼을 발휘하며 이번 대회에서 기어이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늘 언더독의 자리에 있었던 데프트에게 MZ세대가 열광하는 이유입니다.

축구는 가끔 인생에 비유되곤 합니다. 축구광으로 알려진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는, 축구가 재미있는 건 거기에 정의가 '펄펄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축구 얘기를 하면서 웬 정의 타령이냐고 하겠지만, 그녀의 시('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에 따르면 축구장엔 거짓과 위선이 숨을 곳이 없습니다. 유리처럼 투명한 그곳에선 누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 어느 선수가 심판의 눈을 속였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한 패배는 승리만큼 아름답고, 진실된 땀은 결코 헛되지 않다고 그녀는 노래합니다.

'중꺾마'는 열정과 용기에 대한 잠언이기도 합니다. 지난 3일 새벽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 경기 후 조규성이 축구팬으로부터 건네받은 태극기에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과 함께 'Impossible is nothing' 'Never give up'이라는 영어 문장도 같이 씌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에 담긴 뜻이 단순히 '불가능은 없다'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만은 아닐 것입니다. '1%의 가능성'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용기, 질 때 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당당함, 그리고 그런 후 얻어낸 값진 승리에 젊은이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폴 스콜스는 자신의 책 '스콜스: 나의 이야기'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땀에 젖은 유니폼이 전부"라고 썼습니다. 아마도 축구팬들이 선수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것이 전부인지도 모릅니다. 승리와 패배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우리들의 인생도 이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4강에 진출한 선수들의 땀에 흠뻑 젖은 유니폼을, 그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축구공은 둥급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생활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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