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서울시가 13일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가 열리는 지하철역에서 심각한 운행 지연이 예상되면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키기로 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80차례의 전장연 시위로 시민 불편이 큰데다 안전사고 위험까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법적 근거는 '운전 관제·역장은 승객폭주, 소요사태, 이례 상황 발생 등으로 승객 안전이 우려될 경우 역장과 협의하거나 종합관제센터에 보고해 해당 역을 무정차 통과시킬 수 있다'는 교통공사 관제 업무 내규와 영업사업소 및 역 업무 운영 예규이다. 규모가 크거나 과격한 시위는 '소요 사태나 이례 상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역에서 열차가 서지 않을 경우 이곳에서 승·하차하려는 승객들이 불편을 겪겠지만 정차했을 때의 피해가 이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이다.
장애인 시위는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간과하기 쉬운 문제와 관련해 행동을 촉구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당한 권리이기도 하다. 전장연은 국회의 내년 예산안 처리가 임박한 시점에 맞춰 전날 대통령실 인근인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과 법제화 등 주장하는 시위를 다시 시작했다. 실제로 국내 등록 장애인은 국민 전체의 5%에 이르는 데도 지원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분의 1에 불과한 실정이다. 대표적인 서민 교통수단에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으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탈시설 지원, 교육 예산 증액 등과 함께 전장연의 핵심 요구사항인 만큼 지하철역 시위가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문제는 그동안 시위가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시간대에 휠체어를 천천히 움직이거나 기어서 승차하고, 아예 사다리로 열차 출입문을 닫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수시로 열차 운행이 장시간 지연되자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고, 여론도 나빠졌다. 시위 양상이 달랐다면 시민들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전장연은 권리는 권리대로 주장하되 비장애인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더 나은 방법이 없는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 권리 확대는 당위적 사안이지만 그 속도에 대한 체감도는 각자 입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동권과 관련해서는 20년 전 교통약자법이 제정된 이후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3%까지 올라가는 등 성과가 적지 않았다. 내년부터는 시내버스 교체 시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불편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더라도 당장 일상생활에서 이런저런 불편을 겪는 장애인들로서는 답답하고,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정부와 국회는 한정된 예산을 우선순위에 따라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런 입장 차이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큰 게 사실이다.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공동체의 성숙도를 반영한다. 과격 시위나 무정차 통과와 같은 방식은 우리 사회의 수준에 걸맞지 않을 뿐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이날 출근길 시위에서는 전장연이 운행을 지연시키는 행위를 자제했고 따라서 무정차 통과도 없었다고 한다. 양측이 사회적 약자 보호,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가치 위에서 합리적 해법을 찾아가길 바란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저작권자 ⓒ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