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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야구의 성지 전주종합경기장, 역사 속으로

뉴시스

입력 2022.12.23 13:15

수정 2022.12.23 13:15

기사내용 요약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제2홈구장으로 사용
1990년대 쌍방울 레이더스의 홈구장…야구팬 열광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전주종합경기장 전경.(사진=전주시 제공)
[전주=뉴시스]윤난슬 기자 = 전주종합경기장 전경.(사진=전주시 제공)
[전주=뉴시스]최정규 기자 = 전북 야구의 성지인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이하 전주야구장)이 건립 6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전주시가 전주종합경기장 부지개발을 위해 전주야구장 철거에 돌입하면서다.

전주시는 야구장 철거를 위한 건축물 해체 허가 등 모든 행정절차를 마무리 내년 6월 안에 공사를 끝낼 계획이라고 23일 밝혔다.

전주야구장은 종합경기장 서쪽에 본부석과 관중석을 합해 5571㎡ 규모로 지난 1963년 전국체육대회 진행을 위해 주 경기장과 함께 건립됐다.

1987년에는 조명탑을 설치하면서 야간 경기까지 가능했으며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과 함께 호남의 야구 역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기장이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전북을 연고로 한 쌍방울 레이더스 등 프로팀의 홈구장으로 사용됐으며 전북 야구팬들의 추억과 영광이 깃든 장소다.

◇해태 타이거즈의 영광에 한 몫

전주야구장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다. 1982년 해태 타이거즈가 창단한 뒤 광주를 제1연고지로, 전주를 제2연고지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전주야구장은 1989년까지 해태타이거즈의 제2홈구장으로 사용됐다.

무엇보다 전주야구장은 해태 타이거즈의 승리 보증수표였다. 전주경기장에서 해태의 경기는 총 65경기가 치러졌으며, 전적은 40승 1무 24패로 무려 61.5%의 승률을 자랑했다.

1987년 해태는 OB베어스와 플레이오프를 이곳 전주에서 치렀다. 경기는 접전 끝에 해태의 승리로 끝났다. 이날의 승리를 기점으로 해태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1989년 9월 23일 해태는 '전주 고별전'을 치른 뒤 전주야구장을 떠났다.

◇전북연고 첫 프로팀 ‘쌍방울 레이더스’ 홈구장

해태가 전북을 떠난 뒤 1990년. 전북을 연고로 하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됐다. 하지만 창단 초기 5년까지는 전북 도민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가 1996년 전주야구장이 붐비기 시작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이 쌍방울에 부임하면서다.

김성근 감독의 부임 이후 쌍방울은 홈경기 17연승을 질주했고, 1996년과 1997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전북 야구팬을 열광시켰다.

이러한 이유에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장 개조가 있었다.
쌍방울은 창단 이후 1995년까지 피홈런 1위였는데 전주야구장이 작아 타자들이 홈런을 치기 좋았던 것.

김성근 감독은 전주야구장의 2.1m 펜스 위에 3.7m 철망을 얹는 것으로 피홈런 문제를 해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쌍방울이 재정난으로 야구팀이 해체된 뒤 전주야구장은 사회인야구장과 중학교야구부의 연습장으로 쓰였다.


시민 최모(60)씨는 "야구를 너무 좋아해 1980년대와 90년대 해태와 쌍방울의 경기를 보기 위해 전주야구장을 많이 찾았던 기억이 있다"면서 "이러한 야구장이 이제 사라진다고 하니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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