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2022 키워드] #용산시대로 시작해 #중꺾마로 마무리

김정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12.29 16:59

수정 2022.12.29 17:02

2022년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은 요동쳤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이 교체됐고 지방권력도 뒤집혔다. 경제는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 충격에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고 자금시장도 경색돼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러시아는 끝끝내 우크라이나를 침공, 전세계를 공포에 빠트렸다.

핼러윈을 앞둔 주말이던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는 158명이 압사하고 196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해 전 국민이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기대가 크지 않았던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선 뜻밖의 16강 승전보로 전국민이 열광했다.
2022년 한해를 달궜던 키워드 5개를 정리해본다.
#1. 윤석열 대통령…용산시대 개막과 청와대 개방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후 차량에 올라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후 차량에 올라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이제 청와대란 없습니다. 일단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3월 20일 청와대의 국방부 청사 이전 계획을 발표하며)

올해 3월 9일 치러진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지난해 3월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은 뒤 불과 1년 만에 '0선'의 정치신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드라마를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전국 선거에서 연달아 참패하며 궤멸 지경에 이른 보수진영의 구원 투수로서 '공정과 상식'을 시대정신으로 내세워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여의도 정치 문법을 깨며 극적으로 집권한 윤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후에도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명분으로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고, 청와대를 일반 국민에 개방한 것이 대표적이다. 관저도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을 개조해 입주했다.

특히 집무실과 같은 건물 1층에 기자실을 두고 취임 다음 날부터 지난달 18일까지 출입 기자들과 각본 없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61차례 진행했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취임 11일 만에 역대 가장 빠른 한미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자유와 연대의 가치 동맹을 강조하며 글로벌 공급망 구축 등 경제 안보에 주력했다.

내치에서는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새 정부 3대 개혁 과제로 제시하는 한편,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자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을 벌이고 민간 주도 성장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2. 인플레와의 전쟁…미국 등 초긴축에 경제 급랭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로이터 뉴스1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로이터 뉴스1

"고통 없는 방법이 있기를 바라지만, 그런 길은 없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9월 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1970∼8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 기록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세계 경제를 덮치면서 미국 등 각국이 일제히 초고속 금리 인상에 나섰다.

코로나19 이후 공급망 차질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식량 가격 급등까지 겹치면서 세계 물가는 수십년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미국은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이 8.6%로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물가 안정이 '발등의 불'로 부상했다.

이에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연초 0.25%이던 기준금리 상단을 15년새 최고인 4.5%까지 신속히 끌어올렸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로 외국자본 유출 등을 우려한 세계 주요국들도 줄줄이 금리 인상에 나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1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재개해 마이너스 금리에서 탈출했다.

이에 세계 주식·채권과 부동산 같은 자산 가치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고 경기후퇴 우려도 커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맞춰 한국은행도 5·7·8·10·11월에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이 중 7월과 10월에는 유례없는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부동산시장 및 금융시장에도 충격을 줬다. 10월 은행권 가계대출 가중평균 금리는 연 5.34%로 10년 만에 최고였다. 가계의 이자 부담이 늘면서 주택 매맷값과 전셋값은 하반기 들어 급락했다. 가파른 긴축 정책과 부동산시장에 대한 우려로 돈줄이 말라가던 자금시장은 강원도가 2천50억 원의 보증채무 미상환을 선언하면서 촉발한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 이어 흥국생명이 11월 초 외화 신종자본증권을 조기상환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장 불안은 극에 달했다.

#3. 전쟁 포화속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지난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우크라이나군 법무관이 하르키우를 공격하는 데 사용된 러시아군의 로켓 잔해들을 살피고 있다. /AP뉴시스
지난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우크라이나군 법무관이 하르키우를 공격하는 데 사용된 러시아군의 로켓 잔해들을 살피고 있다. /AP뉴시스

"(우리는) 키이우에 있다. 우리의 무기가 우리의 실체다.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조국을 지킬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2월 26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키이우를 버리고 도주해 탈출했다거나 이미 항복했다는 미확인 소문이 돌자 키이우 중심부에 있는 대통령 관저 건물을 배경으로 찍은 '인증 영상'을 통해)

2월 24일 러시아가 '특별 군사작전'을 선포하며 우크라이나를 침공, 세계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추진해 자국을 위협했다고 주장했으나, 서방은 정당하지 않은 공격이라며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나섰다.

초반엔 러시아가 파죽지세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내달려 전쟁이 곧 끝날 듯 보였으나, 저항은 거셌다.

우크라이나는 4월 수도권에서 상대를 격퇴했고, 9월 북부 하르키우와 11월 남부 요충지 헤르손을 탈환했다.

러시아군이 물러난 부차 등지에선 잔혹한 민간인 학살 정황이 드러났다. 시민이 대피한 극장과 체육관 등지에 무차별적으로 미사일이 날아와 큰 인명피해를 낳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전쟁이 유럽 한복판에서 터지면서 국제사회는 사실상 신냉전 체제에 접어들었다. 서방은 경제 제재의 칼을 뺐고, 러시아는 가스공급 중단 등 에너지 무기화로 맞섰다.

전세가 불리해진 러시아는 핵카드를 꺼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 등 점령지의 자국 영토 편입을 선언하고 이곳이 공격받으면 핵무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엄포를 놨다.

겨울이 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력시설을 미사일과 이란제 드론으로 폭격하며 시민을 추위로 내몰았으나, 우크라이나는 2014년 잃은 크림반도까지 수복하겠다는 결사항전 태세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인 1천700만명 이상이 피란민이 됐고, 민간인 6천∼8천명이 죽었다. 러시아군은 10만명 넘게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4. 이태원 압사 참사... 158명의 영혼이 잠들다

지난 11월 9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1월 9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10월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158명이 압사하고 196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핼러윈을 앞둔 주말 이태원동 일대에 10만 명이 넘게 몰렸고, 해밀톤 호텔 옆 좁은 골목에서 밀집된 인파가 뒤엉키며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희생자의 약 90%가 20·30대 젊은이였다.

참사 현장은 길이 45m, 폭 4m 내외에 불과하고, 경사까지 심한 비탈길이어서 많은 인파가 몰릴 경우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큰 골목이었다.

참사 원인과 책임 규명 과정에서 서울시와 경찰, 소방이 많은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됐던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적절한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의 공동정범으로 입건해 수사를 벌였다.

특수본은 핼러윈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용산구청과 용산서, 용산소방서의 과실이 모여 참사를 초래한 것으로 판단했다.

참사 발생 후 경찰과 소방의 수습 조치가 미흡했고, 참사 발생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로 각종 보고서를 삭제하거나 조작했다는 의혹 등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부실한 보고체계로 경찰 수뇌부가 이태원의 긴급사태를 뒤늦게 인지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또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112 신고가 10여 건 접수됐으나 인원 분산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희생자 실명 공개를 두고 정치권에서 여야 간 공방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참사의 총책임자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목해 해임건의안을 강행 처리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해임 건의를 수용하지 않았다.

#5.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 월드컵 16강 진출한 축구대표팀

한국 축구대표팀이 11월 개막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 지휘 아래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지난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이 기뻐하며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축구대표팀이 11월 개막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 지휘 아래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지난 3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대한민국과 포르투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이 기뻐하며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축구 선수 손흥민, 12월 7일 2022 카타르 월드컵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뒤 대회 소감을 밝히면서. '중꺾마'는 11월 '리그 오브 레전드(LoL) 2022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DRX의 주장 '데프트' 김혁규의 언론사 인터뷰에서 유래. 카타르 월드컵에서 12년 만의 16강 진출에 성공한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태극기에 이 문구를 새겨 각오를 다지고, 여러 선수가 이를 인용하며 재유행)

한국 축구대표팀이 11월 개막한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 지휘 아래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우리나라가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것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 이후 12년 만이자 안방에서 '4강 신화'를 썼던 2002년 한일 대회를 포함해 통산 세 번째다.

10회 연속 및 통산 11번째 월드컵 본선 무대에 선 한국의 조별리그 상대는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로 하나같이 만만찮은 팀들이었다.

한국은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에서 0-0으로 비긴 뒤 가나와 2차전에서는 조규성(전북)이 한국 선수로는 월드컵 본선 한 경기에서 최초로 멀티 골을 터트리는 활약에도 2-3으로 져 16강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하지만 세계적인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버틴 포르투갈전에서 기적을 만들었다.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다 수비수 김영권(울산)의 동점 골로 균형을 되찾은 뒤 교체 투입된 황희찬(울버햄프턴)이 종료 직전인 후반 46분 짜릿한 결승 골을 터트려 2-1 역전승을 거뒀다.

특히 소속팀에서 안와골절상을 당해 안면 보호대를 쓰고 전 경기를 뛴 주장 손흥민(토트넘)과 부상에서 회복이 더뎌 조별리그 두 경기를 못 뛰었으나 포르투갈전에서 16강행을 책임진 황희찬 등 태극전사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성적보다 더 큰 울림을 줬다.

#그리고, K컬처... '오징어게임' 에미상 6관왕, 임윤찬 반클라이번 우승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서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서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음악 기부는 듣는 이들이 그간 몰랐던 또 다른 우주를 열어주는 일이고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11월 28일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 음악 등 'K컬처'가 세계 무대에서 상을 휩쓸며 주목받는 한 해를 보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9월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상인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총 6관왕에 올랐다.

드라마 흥행 주역인 이정재와 정호연은 2월 미국배우조합(SAG)상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TV 드라마 부문 남녀주연상을 받았다. 1월에는 '깐부 할아버지' 일남으로 열연한 원로배우 오영수가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품에 안기도 했다.

영화계에서도 낭보가 이어졌다.

5월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송강호는 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각각 받았다. 한국 영화 2편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동시 수상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K팝 인기도 계속됐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스트레이키즈와 걸그룹 블랙핑크는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뿐만 아니라 멤버 진·RM·제이홉·정국·슈가·뷔도 싱글 차트 '핫 100' 문턱을 넘었다.

젊은 연주자들도 대거 세계의 주요 콩쿠르에서 정상에 올랐다.

임윤찬은 지난 6월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했다.
첼리스트 최하영과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역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세계적 권위의 핀란드 장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elena78@fnnews.com 김정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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