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지공거사' 해법 있다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02 18:39

수정 2023.01.02 18:39

[곽인찬 칼럼] '지공거사' 해법 있다
뜨거운 감자는 좀 놔두면 식는다. 예외가 있다. 이 감자는 날이 갈수록 더 뜨겁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지공거사 얘기다. 서울시가 지하철 요금을 300원가량 올릴 모양이다. 적자를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약 1조원 적자를 봤다.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이 30%를 차지한다.

청춘들은 부글부글 끓는다. 뉴스 댓글을 보면 무료승차를 없애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너희도 곧 노인이 된다"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수십년간 면면히 이어지는 세대갈등이 그걸 말해준다.

지난 1981년 노인복지법이 제정됐다. 제9조에 경로우대 조항이 들어갔다. 65세 이상은 국가나 지자체의 수송시설을 무료 또는 할인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전두환 대통령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전 구간 개통식에서 지하철 무료승차를 지시했다. 누가 감히 전두환의 지시를 거역하겠는가.

2010년 김황식 총리가 설화에 휘말렸다. 김 총리는 기자들에게 "왜 65세 이상이라고 지하철도 적자면서 무조건 표를 공짜로 줘야 하느냐"고 말했다. 노인층 여론이 심상찮게 돌아가자 김 총리는 서둘러 대한노인회에 머리를 숙였다. 이후 정치권에서 지공거사 이슈는 금기어가 됐다. 한국은 고령화 진행 속도가 지구촌 일등이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노인 표는 필수다.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2015년 대한노인회는 노인 나이 기준을 70세로 올리는 공론화의 물꼬를 텄다. 청년단체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말 그대로 '물꼬'를 텄을 뿐이다. 노인회는 노인빈곤 해결 등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8년이 흐른 지금 70세 상향 논의는 별 진척이 없다.

국회도 변죽을 울릴 뿐이다. 국토교통위원회는 도시철도법 개정안을 두고 수차례 토론했다. 개정안은 지자체 지하철이 무료승차 때문에 손해를 보면 손실분을 중앙정부, 곧 국가가 부담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정부는 결사반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건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는 투다. 법리상의 이견도 있다. 무임승차는 노인복지법에 근거를 둔다. 따라서 도시철도법이 아니라 노인복지법을 바꾸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가만 생각하면 틀린 말도 아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단칼에 끊는 방식이다. 뒤엉킨 매듭은 풀려고 해봐야 외려 더 꼬이기 십상이다. 내가 제시하는 해법은 이렇다. 노인복지법을 바꿔 지하철 손실을 국가가 부담하라. 무료승차는 대표적인 노인 복지다. 중앙정부가 손실을 부담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자꾸 발뺌할수록 옹졸해 보일 뿐이다. 그 대신 노인 나이 기준은 향후 10년에 걸쳐 70세로 올려라. 5년 경과 규정을 두고 이후 1년에 한 살씩 올리는 방안, 다섯 번에 걸쳐 2년에 한 살씩 올리는 방안이 떠오른다.

퇴직한 베이비부머들이 속속 지공거사증(證)을 수령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58년 개띠'가 노인으로 공식 편입된다.
지하철 요금인상을 둘러싼 세대갈등은 확전일로다. 이를 방치하는 건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성공하는 대통령의 5가지 조건을 들면서 제일 먼저 "작고도 중요한 승리를 추구하라"고 조언한다('제왕적 대통령의 종언'). 케케묵은 지공거사 갈등 해결이야말로 작지만 중요한 승리가 아닐까. 윤석열 대통령의 선택을 주목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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