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아이 1명도 안낳는 韓, 근무환경부터 ‘가족 중심’으로 바꿔라" [2023 신년기획]

박소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1.03 18:02

수정 2023.01.04 17:32

Recession 시대의 해법
저출산 극복의 길, 스웨덴 '지속 가능 육아'서 찾다 (下)
한국 출산율 추락 원인은
韓 정부 15년간 313조 쏟아부었는데도 작년 2분기 합계출산율 0.75명으로 뚝
일-가정 결합 불가능한 문화가 부추겨
여성들만 육아에 내몰리는 점도 문제
스웨덴 안정적 출산율 비결은
아이 친화적 노동환경 잘 갖춰져
가정·직장 내 성평등 문화도 정착
남성 육아휴직 사용 이미 보편화
1980년대 가족정책 개혁 효과 빛봐
‘젠더 평등’ 가족정책 뿌리내리려면
저출산 근본적 해법, 비용과 거리 멀어
어린 자녀 있으면 업무 시간 조정해주고
아이 아플땐 일보다 육아에 집중하도록
장기적 관점에서의 정책·예산 세워야
군나르 안데르손 스톡홀름대 인구통계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말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소현 기자
군나르 안데르손 스톡홀름대 인구통계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말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소현 기자
"아이 1명도 안낳는 韓, 근무환경부터 ‘가족 중심’으로 바꿔라" [2023 신년기획]
"아이 1명도 안낳는 韓, 근무환경부터 ‘가족 중심’으로 바꿔라" [2023 신년기획]

【파이낸셜뉴스 스톡홀름(스웨덴)=박소현 기자】 "스웨덴 출산율은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젠더 평등적인 가족 정책과 아이를 갖는 분위기를 이해하고 허용하는 근무 환경, 그리고 경제 환경입니다." 스웨덴의 인구학자 군나르 안데르손 스톡홀름대학교 교수는 스웨덴의 출산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은 지난 1974년 여성과 남성 모두가 6개월간 사용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육아휴직(부모휴가·parental leave)'과 동시에 아픈 아이를 집에서 돌보고 월급의 80%는 정부가 지급하는 VAB(Vard av barn·아픈 자녀 돌보기) 등 가족 정책을 전면 도입했다.
제도가 정착하는 동안 스웨덴 근무 환경은 점진적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일할 수 있도록 가족 친화적 문화로 바뀌었다. 여기에 1980년대에 찾아온 경제 호황기는 스웨덴의 출산율을 2.14명(1990년)까지 끌어올리는 든든한 동력이 됐다.

안데르손 교수는 "가족 정책과 함께 근무 환경이 어린 자녀를 가질 수 있도록 허용했다"면서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 조금 더 일찍, 아마도 오후 5시에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로 말했다.

이 같은 스웨덴의 변화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스웨덴에서도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은 전업주부였다. 하지만 세계 1·2차대전을 겪으면서 남성 노동력이 급격히 줄었고 이를 대체할 여성의 노동력이 절실했다. 하지만 여성을 사회로 진출시키기 위해서는 일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가족 내 성평등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가족정책을 개혁했다. 이 가족정책 효과가 1980년대 스웨덴 경제호황기와 맞물리면서 출산율 증가로 이어졌다는 것이 안데르손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당시 독일, 서유럽과 다르게 스웨덴에서는 여성이 이미 노동시장에 정착했다"면서 "육아휴직, VAB 등 가족 정책이 도입됐을 때 정책 초점은 여성들이 자녀가 있어도 계속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녀가 있는 경우에 어떻게 그 상황에 적응하도록 해야 할지를 고려했다"면서 "스웨덴에는 변화가 필요했고 우리는 새로운 상황에 잘 적응한 것인데 스웨덴은 정책을 실용적으로 접근한다"고 했다.

실제 지난 1970년 1.94명이었던 스웨덴 출산율을 1.61명(1983년)까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걷다가 지난 1984년(1.65명)부터 상승 반전해 1990년 2.14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는 스웨덴 출산율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1980년대에 가족 정책 개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첫째와 둘째 사이의) 출산 간격이 더 짧아졌고 더 늦은 나이에 첫아이를 낳는 출산 연기도 멈췄다"고 설명했다.

다만 스웨덴의 제도가 문화적으로 정착하는 데까지는 수십년이 소요됐다. 가족정책이 스웨덴의 아이 친화적인 근무 환경뿐만 아니라 가정 내 성평등, 직장 내 성평등 등 젠더 평등(gender equality)까지 문화적으로 뿌리내리는 데 최소 30년에서 50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74년에 도입된 육아휴직도 20년 동안 여성만 사용하자 지난 1995년에는 남성 육아휴직 의무기간을 30일로 설정했다. 2000년에는 60일, 90일로 늘렸다. 현재 스웨덴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은 약 90%에 육박한다. 남성 육아휴직이 보편화된 시기는 2000년대에 진입한 이후다. 안데르손 교수는 "당장이 아니라 수십년이 걸린 느린 프로세스"라면서 "육아 정책이 점차 확대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집중한 결과"라고 말했다.

출산율에 있어서 경기 변동 등 경제 환경도 중요한 팩터로 작용했다. 지난 1970년부터 지난 2021년까지 스웨덴 출산율 추이를 살펴보면 출산율이 상승하는 시기는 1983년에서 1990년, 1999년에서 2010년까지 두 차례다. 두 시기 모두 스웨덴의 국내총생산(GDP)이 급증하는 시기와 겹친다. 지난 1983년 1050억달러(약 134조억원)였던 스웨덴 GDP는 1992년 2843억2000만달러(약 363조원)까지 증가했다. 약 10년의 경기 침체기를 거친 후 2001년 2424억달러(약 310조원)에서 2011년 5740억9000만달러(약 733조원)까지 상승했다.

안데르손 교수는 "경제 위기가 오면 젊은이들이 대학에 진학해 고등교육을 더 오래 받고 노동시장에 나오면서 출산하는 시기가 지연된다"면서 "일자리가 구해지면 출산율이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이 둘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스웨덴도 지난 2016년부터 글로벌 불확실성 문제로 출산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그는 "젠더 평등적 가족 정책, 젠더 평등적 근무 환경 등이 한 방향으로 작동돼야 하고 이것이 2016년까지는 통했다"면서 "지금 출산율 감소는 전 세계적인 추세인데 이에 대한 원인을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 2·4분기 합계출산율 0.75명으로 급격하게 추락하는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적 추세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안데르손 교수는 한국의 출산율 추이 그래프를 보더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탄식했다. 그는 한국 출생률 급감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일과 가정 생활을 결합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를 지목했다. 즉 한국은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 균형을 잡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는 "남자들은 가정(육아)에 큰 공헌을 하지 못하고 있고 여성들만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아이를 키우기에 너무 경쟁적인 사회와 장시간 근로를 요구받는 환경 역시 출산율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렇다면 외국인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의 저출산 난제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한국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15년간 약 313조6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향후 5년간 약 383조9000억원을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수백조원의 예산은 주로 현금 지원에 집중돼 있다. 만 1살 이하의 아기 부모에게 매달 50만원의 영아수당을 지급하고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을 높이며 남성 육아휴직 제도 정착을 위한 지원금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안데르손 교수는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하느냐가 아니라 그 돈을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가령 고용주가 직원들이 아이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압력이 필요한데 (저출산 해법은) 비용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실제로 많은 투자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지 않냐"고 꼬집었다.

그는 "가장 주요한 투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 육아와 육아휴직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돼야 한다"면서 "이는 정부가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붓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가족 정책뿐만 아니라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과 예산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은 사람에게 돈을 직접 더 주는 것은 근본적인 저출산 해법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인 셈이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를 둔 부모를 배려해 직장에서 회의를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열도록 근무 환경을 조성하거나 아이가 아플 때 직장에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 돌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VAB와 같은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라는 것이다. 당장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단기적 방안보다는 육아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도록 장기적인 가족 정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안데르손 교수는 "아이가 어릴 때 좀 더 짧게 일하는 것이 생산적일 수 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그들은 회사로 돌아와서 기여한다"면서 "근무 환경, 회사가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경쟁 중심의 한국사회가 진정하고 워크 앤드 라이프 균형을 찾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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