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지난해 말 미국의 AI 연구 기업 오픈AI가 내놓은 인공지능 챗봇 ‘챗GPT'(ChatGPT)의 등장에 IT업계가 들썩였다.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완성된 문서 형태로 내놓는 챗GPT는 언어능력은 물론 단순한 일상 대화를 넘어 인간만의 영역이라 여겨져온 예술과 창작에서까지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성큼 다가서고 있는 'AI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까.
(서울=뉴스1) 박상휘 박혜연 이정후 기자 = "인공지능(AI)은 개개인에게 가장 많은 경제적 자율권을 제공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원하지 않는 사람은 일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 준다."
출시되자마자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대화형 AI 프로그램 '챗GPT(ChatGPT)'를 개발한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앨트먼이 지난달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챗GPT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설계된 언어 생성 소프트웨어다.
현재 무상으로 공개돼 있기 때문에 누구나 챗GPT 사이트에 가입하고 질문을 입력하면 답변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긴 글을 짧은 글로 요약할 때나 외국어를 번역할 때 이용할 수 있고 심지어 새로운 글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동안 대화형 AI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챗GPT는 기존의 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우리는 직접 챗GPT에게 "'2023년 초 겨울, 그해에는 많이 추웠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달라"고 주문했다. 결과는 꽤 참신했다. 챗GPT는 단번에 "2023년 초 겨울, 그해에는 많이 추웠다. 춥고 어두운 날들이 지나가고, 일기 좋은 날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겨울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기 집을 잠그고, 추위로 인해 얼굴이 상해지지 않기 위해 손과 얼굴을 자주 씻기 시작했다. 그러나 겨울은 지나가고, 봄이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라는 문단을 만들어냈다.
'겨울'과 '추위'라는 단어에 한정된 묘사이긴 했지만 챗GPT가 새로운 글을 창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AI가 그동안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창조'라는 것을 직접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어서다. AI 기술 발전이 그동안 인간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고유 영역을 잠식할 수 있다는 충격과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알파고에 이어 자율주행으로 이어졌던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열풍이 이제는 대화형 AI로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 표절 프로그램도 통과한 챗GPT 작문…예술 영역까지 확장
일선 학교에서는 이미 챗GPT로 학생들이 작문 과제를 대신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챗GPT는 AI가 쓴 작문을 감지하는 표절 소프트웨어 'Turnitin'까지 통과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보방송통신업계 변호사 A씨(30)는 "학계에서 '논문 쓰기 참 쉬워진 세상이 왔다'는 말이 돈다. 아이디어를 서칭하기에도 좋고 레퍼런스도 주니까 어떤 자료를 읽어야 할지 쉽게 알 수 있다"며 "(AI가) 더 발전되면 논문도 알아서 쓰지 않겠나"라고 전망했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아이들 작문 숙제도 프로그램 코딩도 이것(챗GPT)으로 한다"며 "전문가들이 하거나 사람을 훈련시켜야 하는 부분을 대신하니까 훈련과 교육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는 AI까지 등장하면서 '창작'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콜로라도주립박람회 디지털 아트 부문에서는 AI 프로그램 '미드저니'(MidJourney)'가 그린 작품이 1등을 차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ENA의 웹드라마 '가우스전자'의 로고송은 AI가 작곡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김 교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몇 달을 고생하는데 AI는 몇 초 만에 내놓는다. 이것을 사람의 그림과 똑같은 것으로 취급해버리고 같은 권리를 준다면 사람과 그 저작물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창의성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 AI와 인간의 작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AI에게 물어보니
챗GPT에게 다시 물어봤다. "챗GPT를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챗GPT는 "챗GPT는 작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 사용하는 창의적 생각과 감정,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챗GPT는 주어진 프롬프트에 따라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작가가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며 "챗GPT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으려면, 작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을 재정의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즉 AI가 인간의 '창작'을 흉내 낸다고 해도 그것을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프로그래머 이범국씨(29)는 "그림이나 글이나 AI가 인간이 보기에 미적인 것을 내놓기는 하는데 그걸 왜 했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며 AI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씨는 "AI가 한 결과물을 분석하려면 그 사이에 수만 가지의 연산 과정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걸 인간이 다 분석할 수가 없다"며 "AI가 뭔가 예술을 내놓고 그게 우리 눈에 아름답고 깔끔하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AI가 인간과 대화가 가능할지는 몰라도, 인간의 감정적·비언어적인 교류까지 흉내 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임상심리상담사 김시현씨(30·가명)는 "심리 상담은 내담자와 상담자 간 관계가 상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커서 AI가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대체할지는 몰라도 내담자와 관계 쌓는 일까지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AI는 치밀하게 계산하고 학습한 것을 출력하는 데 비해 상담 관계에서는 상담자가 잘했을 때뿐 아니라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실수했을 때 관계의 균열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신뢰도 크다"며 "(인간은)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혜연·이정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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